소재 업계는 사람 전쟁 중이다. “요 몇 달 사이에 헤드헌터한테 전화 한 통화 안 받았으면 정말로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화학·화학공학·신소재·재료공학 등 화학·소재 분야 전공 인력 기근이다.
이유는 올해 말 삼성이 수원에 전자소재연구단지를 개소하기 때문이다. 올해 약 7000명 규모로 운영을 시작하고 내년까지 소재 연구개발(R&D) 인력 2만명을 확보할 계획이다. 글로벌 기업을 막론해 소재기업들은 우수한 직원들이 옮겨갈까봐 전전긍긍한다. 특히 대기업 수준 연봉을 맞춰주기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은 다양한 유인책을 내면서 직원들 단속하기 바쁘다.
이런 현상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반도체, 소프트웨어 업계가 한 번씩 겪었던 일이다. 지난 2009년 이후 삼성전자가 시스템LSI 사업부를 대폭 강화하면서 국내 멀티미디어 반도체 업계에는 인재가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인력 빼가기가 너무 심해 `을`인 중소기업이 `갑` 대기업에 항의 공문을 보낸 일도 있었다. 스마트폰 출시 후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를 시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그룹 계열사에서도 “전자 때문에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였다.
어떤 회사 경영자든 능력 있는 인재를 확보해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싶어한다. 우수 인재에 대한 욕심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삼성으로서는 앞으로 먹거리를 고민하고 관련 인재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다만 걱정되는 건 열악한 국내 소재 산업 생태계다. 삼성이 신사업을 강화할 때마다 하위 생태계에서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중소기업이 애써 키워 놓으면 대기업이 데려간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이렇게 인재들이 사라진 업계는 사람을 더 키울 여력도 실력도 바닥난다.
신사업에 진출할 때 기술·인재를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검증된 경력직을 영입하는 게 당장에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애플·퀄컴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신사업을 추진할 때 인수·합병(M&A)을 우선 추진하는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