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12일.
정보통신부 기자실은 몰려든 보도진으로 초만원이었다. 여름 날씨만큼이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어이 밀지 마.” 사진기자들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가벼운 몸싸움도 불사했다.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17대 국회의원·ICU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은 이날 오후 2시 기자실에서 통신 업계 판도를 바꿀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을 확정, 발표했다.
통신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메가톤급 정책이었다. 안 장관 기자회견에는 주무 국장인 석호익 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 ETRI 초빙연구원)이 배석했다. 재계의 시선은 정통부로 집중했다. 지난 1995년 PCS 사업자 선정 이후 재계 판도를 바꿀 IMT2000 사업이었다.
김인식 정통부 공보관(현 한국스마트TV산업협회 부회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장관께서 IMT2000 선정정책을 발표하겠습니다.”
안 장관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를 받으며 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 발표문을 차분하게 읽었다.
“정부는 2㎓ 주파수대 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가장 관심이 많은 사업자 수는 우선 통신경쟁을 촉진하면서 서비스 제공 측면을 감안해 3개를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중복·과잉 투자를 방지하고 보다 많은 관련기업에 사업 참여 기회를 주기 위해 컨소시엄 구성을 유도하기로 했습니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컨소시엄을 구성하지 않으면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며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5점의 배점을 고려하고 있고, 컨소시엄을 구성하지 않으면 이 점수를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컨소시엄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안 장관은 “사업자 선정 방식은 출연금 상한액(1조3000억원)과 하한액(1조원)을 도입하되 신청법인 수가 사업자 수와 같거나 적으면 담합 방지를 위해 상·하한액의 평균액(1조1500억원) 이상을 제시토록 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이어 “주파수 할당대가로 받는 출연금을 정보화촉진기금으로 전입, 정보통신 분야 투자에 국한해 사용할 계획이며 기금의 사용계획과 실적을 국회에 보고해 심의토록 하겠다”며 “기술표준은 복수표준(동기와 비동기)을 채택해 업계가 자율로 결정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과거 PCS 의혹사건을 의식한 듯 사업자 선정의 모든 과정은 한 점 감춤 없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회고.
“사업자 선정정책과 관련해 정통부는 만전을 기했습니다. 1안과 2안, 3안을 만들어 놓고 장단점을 꼼꼼하게 분석했습니다. 청와대에 선정정책을 보고는 했지만 이 사업과 관련해 청와대 측의 주문사항은 없었습니다.”
안 장관이 발표한 IMT2000사업자 선정정책은 아래와 같다.
◇사업자 수=경쟁을 촉진하면서 사업성이나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적정하고 중복·과잉 투자를 줄이도록 기존 사업자나 신규 사업자를 차별하지 않고 능력이 우수한 3개 사업자를 선정한다. 많은 통신서비스업체와 정보통신기기, 콘텐츠 등 관련기업이 참여하고 시너지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주주 구성의 적정성을 평가함으로써 컨소시엄 구성을 유도한다.
◇사업자 선정방식=현행 사업계획서 심사 방식을 보완, 출연금의 상한(1조3000억원)과 하한(1조원)을 도입해 제시액이 하한액을 넘으면 초과액에 따라 일정점수(예 2점)의 가점을 주는 경매 방식의 장점을 가미한다. 이때 신청법인 수가 선정하려는 사업자 수와 같거나 적을 때는 상·하한액의 평균액(1조1500억원) 이상을 표시토록 하고, 하한액 또는 평균액 미만일 때는 부적격으로 처리, 신청업체 간 하한액으로 담합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방지한다. 출연금은 구성주주가 부담토록 해 주주의 자본이득 일부를 회수하고 출연금 부담 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되거나 이용자에게 부담이 증가되는 것을 최대한 줄인다.
◇심사기준 마련과 평가=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심사항목을 간소화·객관화하고 계량평가 점수를 상향 조정하는 등 현행 심사기준을 보완한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정책심의위에 `심사기준 개선방안 검토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업계,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7월 말까지 심사기준(안)을 마련한다. 9월 말에 허가신청을 접수하면 정보통신 관련 연구기관, 학회,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심사기간에 허가신청 업체들에 사업계획서 설명과 질의·응답 기회를 준 뒤 심사위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 심사하도록 한다. 특히 과거와 달리 심사항목, 평가방법, 배점 등 모든 심사기준과 심사결과를 공개한다.
◇기술표준=복수표준을 채택, 업계가 자율로 결정토록 한다. 이는 균형적인 산업발전을 이끌고 글로벌 로밍을 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이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파수 할당대가=출연금은 전파법에 따라 정보화촉진기금으로 전입되며, 여러 해에 걸쳐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국민정보화 교육, 전문인력 양성, 정보통신 기술개발 등에 국한해 사용한다. 기금 사용계획과 실적은 매년 국회에 보고, 심의토록 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집행한다. 주파수 대가는 자본참여자가 경제적 지대를 독점 못하도록 적정 수준에서 정했으며, 주파수 이용기간을 15년으로 해 이 기간 예상매출액의 3%(종전 PCS는 5년간 매출액의 7%)를 적용, 사업자당 1조3000억원으로 했다. 우리나라처럼 심사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프랑스의 주파수 대가를 우리나라의 인구, GDP, 주파수폭, 사업 환경 등을 적용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산정했다. 따라서 상한액은 1조3000억원, 하한액은 상한액의 약 75%인 1조원으로 정했다.
◇출연금 납부방식=일시납부와 분할납부 중 사업자가 선택토록 하되, 분할납부의 절반은 허가서 교부 전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10년 범위 안에서 업계가 자율적으로 기간을 정해 낼 수 있도록 했다.
◇향후 계획=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를 구성해 관련업계,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7월 말까지 심사기준 개선안을 마련하고, 9월 하순에 허가신청을 접수, 12월까지 사업자를 선정한다.
기자들의 질문 가운데 실무적인 내용은 석 국장이 답변했다.
석 국장의 말.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모든 일은 원칙에 따라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정부가 사업자를 선정하고 나면 어느 기업도 승복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는 다 잘했는데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는 등 책임을 남 탓으로 돌렸습니다.”
사업자 선정정책이 발표되자 한국통신(현 KT)과 SK텔레콤, LG, 한국IMT2000 등 사업권 획득을 노리는 업체 간 통신대전(大戰)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IMT2000 선정정책을 확정하기까지는 1년여가 걸렸다. 그만큼 선정 방식을 결정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정통부가 IMT2000 정책을 처음 발표한 것은 1999년 7월 27일.
정보통신부는 IMT2000 사업자 수와 사업자 선정 방식을 2000년 6월까지 확정하고, 9월까지 사업허가 신청을 받은 후 2000년 12월에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석호익 정통부 당시 전파방송관리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IMT-2000 사업자 수에 대해 “공청회를 거쳐 논의하겠으나 외국은 대부분 3∼5개 범위에서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3월 16일.
안병엽 정통부 장관이 IMT2000사업자 선정에서 기준표준을 최대한 늦게 확정하고, 주파수 경매제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준표준은 업체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었다.
정통부와 민주당은 그해 6월 9일 당정협의를 열고, 주파수 경매제와 사업심사 방식을 협의했다. 정세균 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열린우리당 의장·산업자원부 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 참여를 대폭 확대해 달라”고 정통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안병엽 장관은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면서 당과 충분히 협의해 최종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통부는 그해 두 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고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만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
그해 6월 13일.
정보통신부가 주관하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제1차 IMT2000 정책 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이날 오후 2시부터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정부, 학계, 시민단체, 통신업체, 장비제조업체 등에서 400여명이 참석해 IMT2000에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공청회에서는 그동안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전담반에서 마련한 초안을 토대로 △사업자 수 △사업자 선정방식 △기술표준 △출연금 산정기준과 규모 등 IMT2000 관련 정책 과제들에 대한 광범위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해 7월 6일. 정통부는 제2차 공청회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었다. 정통부는 이날 1차 공청회 결과와 정보통신정책심의회, 언론계 간담회, 인터넷공청회, 국회 상임위 등에서 모은 각계 의견을 바탕으로 사업자수, 사업자 선정방식, 기술표준 등 IMT2000 사업자 선정정책 방안에 관한 단일안을 마련했다.
정통부는 2차 공청회 의견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년여 만에 정부의 최종 정책 방안을 확정했다. 이권이 걸린 사업인 만큼 정통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자칫하면 제2의 PCS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