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휘어지는(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양산한다. 아직 깨지지 않는 디스플레이 수준이지만 접고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출시될 날도 머지않았다. 입을 수 있는(웨어러블) 전자기기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반도체 업체들도 앞다퉈 웨어러블 단말기를 겨냥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인텔이 지난달 `인텔개발자포럼(IDF)`에서 발표한 `쿼크(Quark)`는 웨어러블 기기에 맞는 초소형 프로세서다. 크기는 저전력 모델 `아톰`의 5분의 1, 전력 사용량은 10분의 1이다.
각종 전자제품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수준이다. 논리(로직)회로 합성이 가능해 각종 기능을 통합한 시스템온칩(SoC)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인텔이 쿼크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 퀄컴은 자사 프로세서를 넣은 스마트워치 `톡(Toq)`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애플도 각각 자사 칩을 넣은 갤럭시기어, 아이워치를 출시하면서 웨어러블 시대 개막을 알렸다.
반도체 대기업들이 프로세서와 통신칩을 기반으로 웨어러블 시장에 진입하는 가운데 중견·중소기업들도 틈새시장을 찾고 있다. 여러 기능이 SoC 하나에 통합되면서 반도체 업계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어 미개척 시장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웨어러블이 가능하려면 작고 가볍고 전력소모량이 적은 반도체 개발이 필수다.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려면 실시간 배터리 충전도 가능해야 한다.
국내 중소기업인 라온텍은 소비전력이 150㎽에 불과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RDP500H`를 개발했다. 스마트안경이나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 적합한 제품이다. 프로젝터에 주로 쓰이던 LCoS(Liquid Crystal on Silicon) 방식을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한 사례다.
무선충전 시장도 내년 이후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 업체 IHS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무선충전 시장은 오는 2015년까지 연평균 약 60% 성장해 237억달러(약 25조4538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무선충전칩 개발사 IDT는 이보다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제프리 매크리어리 IDT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수년간은 연평균 두 배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며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모든 웨어러블 기기와 자동차에 무선충전칩이 탑재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해 창업한 국내 중소기업도 무선충전 시장에 진출했다. 아날로그반도체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한 맵스는 공진방식 무선충전칩을 선보였다. 무선충전 송신 패드에서 5~10㎝가량 떨어진 모바일 기기도 충전이 가능하다. 송신 패드에서 방출하는 전력의 80% 이상 충전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신현익 맵스 사장은 “전력관리 기술을 응용해 무선충전기뿐만 아니라 전력관리반도체(PMIC), 컨버터, 자동차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삼성전자, 페어차일드 등에서 아날로그 반도체 회로 설계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가 국내에도 다수 있고 지난 5년간 아날로그 반도체 인력이 꾸준하게 배출되고 있다. 세계적인 스마트폰 개발사가 한국과 중국에 포진한 것도 국내 업계가 유리한 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인체 신호 전송 기술은 인체를 매질로 활용해 주변기기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박형일 ETRI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표준화가 이뤄졌고 조만간 30Mbps급 칩이 상용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 모뎀(베이스밴드)·와이파이·블루투스 등 고주파(RF) 관련 반도체 시장을 외산이 장악한 상황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판로를 찾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오감만족 등 차세대 정보통신(IT) 시대에는 지금껏 없었던 기기들이 등장할 전망이다. 반도체는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그동안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좋은 기술력을 갖고도 상업화에 실패해 애를 먹었다”며 “공동 개발,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이전 등 생태계 재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