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소리 나는 현실(미국 의료민영화)과 `억` 소리 나는 제작비(약 1280억원). 닐 블롬캠프 감독의 신작 SF영화 `엘리시움(Elysium)` 얘기다. 엘리시움은 고대 그리스인이 꿈꾸던 불사의 세계다. 말하자면 천국이다. 인종차별을 재기발랄하게 풀어낸 데뷔작 `디스트릭트9` 만큼이나 이 영화에서도 그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로 대변되는 미국의 의료차별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한다.
서기 2154년. 지구는 병들고 오염됐다. 부자는 우주에 건설한 새로운 삶의 터전인 엘리시움으로 이주했다. 황폐한 지구에 남아있는 이들은 가난한 노동자뿐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지구에서 엘리시움으로 가는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 분)의 좌충우돌 고군분투 여정기다. 엘리시움 주민은 미국 상위 1% 백인을, 지구인은 히스패닉계 미국인을 상징한다.
주인공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무엇이든 치료하는 의료기기다. 퍼스널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같은 의료기기는 스캐닝 한 번으로 불치병을 고친다. 버려진 지구인이 목숨을 걸고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것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화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런 의료기기는 부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국내서도 조끼처럼 착용하는 자동제세동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전자 문신`처럼 인체에 삽입하는 기기에 대한 관심도 높다. 존 로저스 미 일리노이주립대 교수팀이 개발한 플렉시블 회로기판은 피부 표면에 부착해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 한다. 영화 속 신세계가 먼 얘기만은 아니다.
오바마와 공화당이 벼랑 끝 대치를 하며 미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까지 불러온 사태를 보며 곱씹어본다. 미국인 3억명 중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은 무려 5000만명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의료기술도 빈민에겐 그림의 떡인 셈이다. 첨단 ICT라도 차별적으로 사용될 때 그 곳은 디스토피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따뜻한 ICT를 생각해본다.
김인기 편집1부장 i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