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B급` 영화가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대학생들이 조용한 숲속으로 여행을 갔다가 여학생 1명만 살아남고 모두 죽는 영화다. 숲속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는데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두 남자가 여학생 `앨리`를 납치한다. 친구들은 앨리를 구하기 위해 남자 둘이 묵고 있는 별장에 들어간다. 나무창에 찔리고, 불에 타고 총에 맞아 친구들은 모두 죽는다. 그들을 구하러 온 경찰마저 사망한다. 결국 두 남자와 앨리만이 남았다…`
2010년 엘리 크레이그 감독이 만든 `터커&데일vs이블`이란 단편적으로 풀면 괴기스러운 공포영화일 수 있겠지만, 사실 장르는 코미디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대학생이 사망하지만 카메라는 우스꽝스럽게 담았다. 친구(앨리)를 뺏긴 대학생들 눈에는 터커와 데일이라는 어수룩한 두 남자의 외모만 보고 납치범·살인자로 몰았다. 그들을 물리치려고 발버둥치지만 모두 자신들의 `실수`로 죽게 된다.
주인공인 터커와 데일은 영문도 모른 체 자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대학생들이 무서웠다. 영화 제목처럼 더커와 데일이 `악마(Evil)`로 변해버린 대학생과 싸워 착하고 아름다운 여대생 `앨리`를 지키는 것이 영화 내용이다.
대학생들은 왜 `악마`가 됐을까. 그 시작은 두 남자 주인공의 외모 때문이다. 조금은 험상궂게 생기고 지저분한 사내들은 대학생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바로 사람의 생김새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고정관념은 `사람들이 어떤 사회집단에 대해 지니고 있는 지식과 인상, 특정집단의 구성원이 이러저러한 특성, 태도, 성격을 지녔다고 믿는 내용`을 말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인상이 대학생들에게는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최근 과학기술계에 고정관념 하나를 없애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4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도쿄대와 일본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기구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이 최근 힉스입자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반세기만에 관측하지 못하고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신의 입자`가 입증된 셈이다.
힉스입자는 기본 입자와 상호작용으로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다.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존재를 이야기했지만 관측이 되지 않아 가상 입자로 남아있었다. 피터 힉스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종교계 반발도 심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분명 존재하는데 어찌 과학적으로 신의 입자를 증명하냐는 것이다. 하필 힉스 입자가 `신의 입자`란 별칭이 붙어 생긴 웃지 못할 논쟁이 생겼다. 과학만능주의는 피해야하지만 너무 강한 믿음은 인간의 위대한 업적도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다.
비슷한 사례지만 다른 의미를 주는 사건도 있다. 1633년 로마 교황청은 `지구가 돈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종교재판으로 탄압했다. 지동설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화형해 처한다고 위협해 갈릴레오의 굴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1992년 10월 로마 교황청은 갈릴레오 재판에 대해 특별 재심 과학위원회를 열고 지동설을 금지한 종교재판이 오류였음을 공식 인정했다. 갈릴레오의 업적은 400여년 만에 종교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르 2세는 “갈리레오 재판은 계몽주의가 일어난 18세기 이래 교회가 과학의 진보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돼왔다”며 “과학과 종교 간 비극적인 상호 불신과 고통스런 오해의 결과였으나 이 순간부터는 과거지사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