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국 게임산업에 '사망선고' 내리나

게임이 질병인가

“이제는 이 나라에 만연된 이른바 4대 중독, 즉 알콜, 마약 그리고 도박, 게임 중독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을 이해·치유하고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회를 악에서 구해야 합니다.”

[이슈분석]한국 게임산업에 '사망선고' 내리나

지난 7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은 우리나라 게임산업 역사에 남을 말이 돼버렸다. 집권 여당을 대표하는 거물 정치인이 게임산업을 국익을 헤치는 악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날 발언은 국회 차원의 `게임산업 사망 선고`이면서 나아가 국회에 상정돼 있는 여당 주도 각종 법안의 11월 처리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4대 중독법안`이 처리에 탄력을 받게 되면 의료계가 주도하는 국가 질병코드 지정도 시간 문제란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11월 국회, 게임 규제법 분수령 될 듯

이런 점에서 게임업계 최대 축제인 `지스타`와 `대한민국게임 대상`이 열리는 11월은 게임산업의 운명을 가르는 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국회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11월 국회는 예산안과 법률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업계의 눈은 보건복지위원회에 쏠렸다.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4대중독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될지 여부가 핵심이다.

신의진 대표 발의 법안은 마약, 알코올, 도박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3대 중독과 인터넷게임을 같은 범주에 놓고 보건복지부 산하에 중독관리센터를 둬 관리하자는 게 핵심이다.

신 의원의 발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되면 게임은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중독유발 물질과 행위로 분류돼 관리대상에 놓이게 된다. 이럴 경우, 공급과 수요를 정부가 정하는 요건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심지어 광고나 마케팅도 정부의 관리대상에 놓이게 된다. 국민 누구나 즐기고 창의성을 발휘해 만드는 게임이 정부 정책의 틀에 묶이는 셈이다. 게임이 진흥시켜야할 산업적 성격보다는 가로막아야할 규제 대상으로 전락한다. 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법적 타당성 논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올려지면 출석의원 과반의 찬성이면 통과된다.

◇정신과 의사 중심 게임 중독코드 논의도 진행 중

게임을 질병 코드에 몰아넣는 논리 개발도 한창이다. 지난 8월 민간 의사와 대학교수가 주축이된 중독포럼이 게임을 중독유발 행위에 포함시키는 논리에 힘을 실었다. 중독포럼은 지난 8월 게임산업을 중독에 포함하는 회의를 한 데 이어 게임중독을 통계청의 질병코드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포함시킬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게임을 즐기는 국민 대다수가 중독에 노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정부의 주시 대상에 포함된다.

질병코드에 포함하면 전담의사를 확충해야 하고 건강보험도 손볼 수밖에 없다. 자칫 국민 재정에도 부담을 안겨줄 수 있는 요소다.

게임업계로서는 황당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이다. 게임을 중독유발 행위 또는 물질로 규정할 경우 현행 셧다운 규제의 강화는 물론 게임산업을 옥죄는 규제안이 만들어질 또 다른 법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한 관계자는 “게임산업을 중독산업에 포함하면 게임산업은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같은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에 들이닥친 규제이슈에 인터넷과 콘텐츠 업계도 주시하는 상황이다.

한 웹툰 작가는 “만화산업이 청소년 보호법이란 미명하에 싹이 잘린 사례도 있다”며 “창의적인 콘텐츠산업이 황폐해지면 이를 복구하는데 최소 10년이 걸린다”고 우려했다.

한 인터넷 포털 기업 관계자도 “중독을 논의하면서 콘텐츠 산업에 잣대를 들이대면 다른 산업도 규제의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중독법안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논의에 인터넷 게임산업 위축 심화

인터넷 게임에 대한 규제가 심화되면서 콘텐츠 산업 최대 수출 분야인 우리나라 게임산업 성장세는 크게 둔화됐다.

올해 2분기 게임 매출은 2조42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에 그쳤다. 게임 수출 역시 7532억원으로 193억원(2.6%)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분기 게임 수출액은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의 57.2%에 달하는 규모다.

올해 상반기 전체로는 매출이 급감했다. 게임은 상반기 4조788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5조690억원에 비해 2808억원(5.5%)이나 감소했다. 이 기간 수출은 1조501억원으로 177억원(1.1%) 증가했다.

최근 콘텐츠진흥원이 게임백서를 통해 발표한 지난해 실적도 전년대비 성장세가 주춤해졌다. 온라인게임은 2012년 6조7839억원 매출을 달성하며 전체 게임시장의 69.6%를 차지했다. 비중은 컸지만 전년 대비 성장률은 8.8%에 그쳤다. 2011년 30.8% 성장한 것에 비하면 성장세가 주저앉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출도 26억3891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지만 전년도 48.1%의 성장률에는 크게 못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게임 수출액의 91.4%(24억1085만 달러)를 차지하는 온라인게임이 플랫폼 시장 변화와 함께 규제이슈에 맞물려 매출과 수출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며 “세계 최고 온라인 게임 강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규제에 묶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