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미 연방수사국(FBI)이 마약 밀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실크로드 결제 수단이 눈길을 끌었다. 달러나 유로가 아닌 가상 화폐 `비트코인(Bitcoin)`이다. FBI는 2년 9개월 동안 실크로드에서 950만비트코인이 거래됐다고 밝혔는데, 이는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실크로드 폐쇄 소식으로 달러 대비 비트코인 가치가 8.6% 하락한 128달러로 떨어졌다는 뉴스도 나왔다. 10월 중국 최대 검색 포털 `바이두`는 자체 보안 시스템 `자이술`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가치는 바이두 소식에 힘입어 156달러까지 치솟았고,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비트코인이 또 다른 실크로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2009년 등장한 글로벌 디지털 가상 화폐다.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 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 P2P 네트워크 기반의 암호화 프로토콜을 사용해 중앙 관리나 개입 없이 분권화된 화폐 발행과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제공한다. 분명 화폐지만 동전이나 지폐 같은 실물이 없다. 비트코인을 사이버 머니나 싸이월드 도토리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특정 회사나 회원제, 특정 사이트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닫힌 화폐가 아니다.
과연 비트코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가 쓰는 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한다. 비트코인은 통화를 관장하는 중앙 기관이 없다. 대신 이용자 컴퓨터가 구성하는 P2P 네트워크로 관리되고 유지된다. 인터넷전화인 스카이프와 흡사한 방식으로 파일을 공유하는 `비트토런트`로 운영된다.
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컴퓨터들이 아주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 새로운 비트코인이 생성된다. 이 과정은 금을 캐는 것과 유사해 채굴(마이닝)이라 불린다. 자동 출제되는 수학 문제는 수식이나 공식으로 풀 수 없다. 시간과 컴퓨터 프로세싱 능력을 요하는 복잡한 문제다. 무작위로 숫자를 하나하나 넣어서 맞히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일정 시간과 컴퓨팅 파워가 필수다.
대략 10분에 한번 꼴로 채굴이 이뤄져 새로운 비트코인 25개가 발행된다. 정부와 중앙은행 결정에 따라 화폐가 발행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향후 100년간 발행되는 비트코인 수효는 2100만개로 제한했다. 마구잡이로 찍어 내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은 기존 화폐와 다르다.
발행뿐 아니라 거래도 전체 네트워크에 공개된다. 거래 기록과 승인도 모두 공개 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비트코인은 한 국가에 제한되지 않으며 세계에 통용된다. 복잡한 송금이나 환전 없이 있는 그대로 보내고 받을 수 있다. 돈이 은행 등의 계좌가 아니라 자신의 전자 지갑에 바로 들어온다.
비트코인이 새 시대를 열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비트코인을 거래 수단으로 받는 상점과 서비스가 제한적이고 네트워크가 불안해 몇 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다.
김진화 지음. 부키 펴냄. 1만6000원.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