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후퇴하는 한국 e교과서 사업

[ET단상]후퇴하는 한국 e교과서 사업

지난달 9일부터 닷새간 열린 `2013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왔다. 세계 각국의 디지털 교육 콘텐츠 개발 현황을 보며 `우리는 이미 늦은 게 아닌가` 하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도서 저작권의 25%가 사고팔리는 세계 최대 저작권 거래 전문 도서전이다. 서적뿐 아니라 각종 멀티미디어 e북, e북 단말기, 클라우드 기반 저작 툴, 차세대 교육 콘텐츠와 연관 기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참관 때에는 맥그로힐, 스콜라스틱, DK 등 글로벌 메이저 출판사들이 향후 e북 사업을 위해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고, 많은 저자들과 디지털 사용권 재계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부적으로는 오프라인 콘텐츠를 DB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1년이 지난 올해는 그 이후의 변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2013년 미국 디지털 교과서 판매량은 서책형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급격한 성장세다. 직원 1000명이 넘는 인도의 e북 개발사는 매출의 90% 이상을 유럽과 미국 출판사에서 올린다. 스마트 교육사업을 국가 어젠다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기업과 차세대 스마트교육 관련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도서전에서 싱가포르는 시범사업과 연관된 스마트패드 기반의 각종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선보였다.

e북 저작 툴과 유통 플랫폼을 개발한 폴란드 국적의 참가기업은 자국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교육부와 공동사업 추진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전 세계 디지털교과서 관련기업은 이미 제작과 연구 단계부터 국제적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이 놀랍다. 지난해 국영 인민출판사는 대규모 부스를 마련해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였지만 조잡한 느낌이 적지 않았다. 올해는 그래픽이나 요소 기술은 좀 부족해도 교육적 콘셉트나 최신 교육공학 추세를 담아냈다. `어떻게 1년 만에 가능했을까` 하고 물어보니, 미국의 유명한 교육공학연구진을 직접 고용하고, 영어 교과서는 아예 미국의 유명 출판사 것을 토대로 개발했다고 한다. 중국 실용주의가 여기서도 잘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1년 정부는 스마트 교육 추진계획을 내놨다. 오는 2015년까지 공교육에 전면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해외 각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스마트 교육 사업은 거창했던 과거 계획과 달리 2년여 만에 일부 `시범학교`의 `일부 과목`으로 축소됐다.

디지털 교과서에 적용하던 기술은 되레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LMS 기반의 수준별 인터랙티브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한 맞춤형 교육이 아닌 단순 멀티미디어 e북 수준이다. 의욕적으로 스마트 교육사업을 추진해야 할 교육업계는 물론이고 IT 관련 기업조차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사이 중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나아가 유럽, 동남아, 남미 등 세계 많은 나라는 미래 정보화 사회에 어울리는 창의적 인재양성을 목표로 스마트교육 사업을 내실 있게, 그것도 국제적으로 추진해왔다.

미래 교육, 미래 교실 환경에 맞는 디지털교과서 개발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차세대 콘텐츠 개발과 활용에는 최신 IT기기가 접목돼야 하고, 상당한 비용과 개발 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세계 스마트교육을 선도하던 우리나라의 이니셔티브는 어디로 갔는가. 지금이라도 정부와 교육업체, 기술 및 콘텐츠 업체가 힘을 모아 세계를 선도할 차세대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또 해외 교육시장을 판매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연구개발 단계부터 글로벌 협력을 추진하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안문환 비상ESL 대표 geopa@visanges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