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임원 20%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KT에서 20여년간 일해 온 한 임원은 “이 회장 CEO 시절 들어온 임원을 제외한 `원래KT` 사람들 모두 뜨끔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회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로 칼바람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원래KT`는 2009년 이석채 회장이 KT 경영을 맡기 전부터 회사에 있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회장이 취임 이후 `올레KT`를 기치로 내걸자 이에 빗대 생긴 신조어다.
이 회장이 KT 경영을 시작한 이후 조직 내 갈등이 심해졌다는 것은 KT 안팎의 평가다. KT와 오랫동안 거래해 온 한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 한 임원은 “이 회장이 취임 후 기존 KT 임직원의 안이함을 공개적으로 질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이 회장을 비롯한 외부에서 수혈된 경영진은 공기업에 뿌리를 둔 KT 특유의 조직문화를 매우 좋지 않게 바라봤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KT를 경영하며 이사회는 물론이고 요직에 외부 인사를 발탁해 앉혔다. 김홍진 KT G&E 사장, 김일영 KT그룹 코퍼레이트센터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KT에 오랫동안 근무해 온 정통 `KT맨`들이 배제되면서 `원래KT`의 박탈감이 심해졌다.
이 같은 기존 KT 인력의 배척은 곧 조직 갈등으로 비화됐다. 올해 초 정권 출범과 함께 `CEO 교체론`이 불거지면서 나온 갖가지 비위 의혹은 대부분 내부 고발자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과 관련된 의혹을 종합적으로 수집하는 임원도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이 회장은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사내 결의대회에서 “바깥에다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하고 낮에는 태연하게 회사 임원 행세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며 “게으른 사람, 아직도 태평인 사람들은 나가라고 걷어차야 한다”며 반대 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내부 갈등 심화는 조직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KT는 지난 7월 이후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통신 부문에서 실적 개선을 기록하지 못했다. 하반기 이 회장이 직접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영업 독려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두고 KT 관계자 한 사장은 “조직 내부 갈등이 적지 않았던 KT는 CEO 리스크가 제기된 이후로 임원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무생물로 변했다”고 표현했다.
일하지 않는 KT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이 회장 등 경영진은 이 같은 조직 경쟁력 약화 원인을 KT 태생에서 찾았다. 이 회장은 지난 3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매년 경쟁사 대비 1조5000억원 이상 더 많이 인건비가 소요된다”며 “인건비 격차를 1조까지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KT 한 직원은 “이메일에서 보듯이 경영진은 놀고먹는 인력이 KT에 많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기간통신 사업자인 KT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철저하게 기업가 입장에서 효율성 잣대만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이 회장의 독단적 경영과 이른바 낙하산 인사의 전횡이 일하지 않는 KT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 시절 퇴직한 전직 KT 임원은 “이 회장이 자신의 사람만 쓰며 `인의 장막`에 둘러싸였다”며 “거의 모든 결정을 몇몇 경영자가 내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줄서기 현상이 심해졌고 꼭대기만 쳐다보며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갈라진 조직 봉합은 KT의 가장 큰 숙제가 될 전망이다. 지금처럼 `올레KT`와 `원래KT`로 두 쪽 난 조직으로는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임 CEO는 우선 조직의 의기투합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각 분야 요직에 진짜 실력을 갖춘 전문가를 배치해 인사 잡음이 사라져야 조직을 추스를 수 있을 전망이다.
KT 한 임원은 “KTF 통합으로 이질적이던 유선과 무선 분야 직원은 이미 상당부분 화학적 결합이 진행됐고 세대교체가 점점 이뤄지면 조직 내 계파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다만 외부 입김에 좌우되거나 독선적인 스타일의 경영진이 오게 되면 보신을 위해 또 무리한 조직개편을 감행할 수밖에 없어 어떤 CEO를 선출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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