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까지 소프트웨어(SW) 전문인력 22만명이 필요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최소 8만명이 부족하다. 교육을 통해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10만명을 민관 협력으로 양성하겠다.”
지난달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SW 혁신전략`의 일부다. 산학연 전문가 172명이 초안을 만들고 관계자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됐다.
`SW 인력 10만명 양성`. 이 말 왠지 귀에 익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지금까지 대기업·하드웨어 중심의 성장이었다면 이제는 중소벤처기업·SW 중심으로 성장해야 한다. 고급인력 1만명, 전문인력 10만명을 양성해 SW산업을 키우겠다.” 2007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명박 후보가 정보기술(IT) 정책포럼에서 밝힌 내용이다. 디지털 최강국 코리아 건설을 이뤄내겠다며 제시한 IT 7대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볼까. “세계 1등 기술 100개를 육성해 세계 5위권 기술강국으로 도약하겠다. IT 요소기술 및 SW 개발을 주도할 IT 중소벤처기업을 적극 지원해 관련 분야 고급인력 10만명을 양성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을 앞둔 2003년 1월 중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의 IT 비전을 밝히며 언급한 내용이다.
SW통으로 알려진 노 대통령 취임 전후로는 `10만 SW인재 양성`에 관한 다양한 건의가 쏟아졌다. 2002년 10월 한국SW산업협회장이던 김광호 포스데이터 사장은 “2005년께 SW 인력 6만명이 부족할 것”이라며 `10만 양병설`을 역설했다. 그 즈음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차기 정부에서는 SW 전문인력 10만명 양성 및 SW개발 전용산업단지 조성 등을 반드시 실천해 달라”고 주문했다. 2004년 5월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은 한국IT리더스포럼 강연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임베디드SW 분야 등 지식산업 고급기술자 10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정도면 지금 다시 꺼내든 `10만 양병설`은 구문(舊聞) 중의 구문이다. 과거 정권에서 제대로만 실천됐다면 지금쯤 발에 차이는 게 SW 인력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583년 병조판서가 된 율곡 이이는 임금에게 10만 양병설을 주청했다. 당시 추정인구는 700만명. 남성인구를 그의 절반인 350만명으로 가정할 때 평균 수명이 40대 중반이었으니 병력으로 최대한 차출할 수 있는 인력은 150만명에 불과하다. 온 식구가 농사에 달라붙어도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기에 10만명을 군사로 키우자고 했으니 선조 임금 입장에선 황당함 그 자체였을 게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인구는 7배, 평균수명은 두 배로 늘었다. 해마다 60만명의 고교 졸업생이 배출되니 숫자 10만의 벽은 결코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10만 타령이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미래의 꿈과 직업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비전이다. 장학금 줄 테니 SW를 공부하라는 식으로는 결코 꿈나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롤 모델이 필요하다. 다수의 SW 스타가 우리 주변에 있다면 등을 떠밀지 않아도, 입 아프게 SW의 중요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꿈나무들은 그들을 닮으려 노력할 것이다.
만일 내 아이가 “우리나라에도 SW로 성공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글쎄…, 국회의원?”
최정훈 취재담당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