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지난 30여년간 숱한 `영광의 시기`를 보내며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맏형` 역할을 했다. 1984년 세계에서 열 번째로 전전자교환기(TDX-1) 개발에 성공, 3년 뒤인 1987년 전국전화 자동화가 완성됐다. 199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인터넷 `KORNET`을 개통하면서 한국을 초고속인터넷 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가가 지분을 소유한 독점 공사기는 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틀을 짠 기업이 KT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KT는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핵심 경쟁력인 통신산업을 기반으로 거대한 생태계를 창출할 때 KT의 경쟁력도 점점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KT는 이미 생태계 선도 이후 그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인프라 기업으로 거듭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전전자교환기를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우리나라에 유선 전화 대중화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결국 KT가 유선전화시장에서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초고속인터넷 전국망을 선도적으로 구축하면서 네이버, 옥션, 다음 등 우리나라 인터넷 생태계를 사실상 이끌고 유선 인터넷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애플, 구글 등이 주도하는 글로벌 ICT산업도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탈바꿈한 상황이다. KT는 유·무선 통신과 뉴미디어에서 가장 좋은 인프라를 가져 얼마든지 생태계 활성화에 나설 수 있는 저력을 갖춘 상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도 충분하다.
전문가들은 이석채 회장의 실책으로 신규 사업에서는 지나치게 성급하게, 기존 ICT 사업에서는 진퇴의 시기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은 의사결정을 내리며 KT의 추락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ICT기업 관계자는 “이 회장의 비ICT 분야 확장이 무조건 잘못됐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이미 경쟁력을 갖춘 분야를 확장하고 KT만의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실기했다”고 지적했다.
새로 선임될 KT CEO는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면서도 ICT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경영에 초점을 맞추면 국민기업으로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재용 한국통신학회장(연세대 교수)은 “KT가 글로벌 ICT 선두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려면 네트워크 기업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ICT 생태계 구성요소인 C-P-N-D를 두루 이끄는 글로벌 ICT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주파수 할당으로 확보한 광대역 LTE를 중심으로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는 것과 함께 콘텐츠·서비스 분야의 중소 벤처를 전략적으로 키우는 전략도 시급하다. 애플이 아이폰을 고가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앱스토어라는 생태계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와 서비스까지 갖춘 네트워크 상품은 소비자가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고 치열한 통신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KT가 이처럼 ICT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서면 벤처 창업기회도 늘어나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도 민간 기업 주도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ICT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CEO가 선임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 CEO는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ICT 기업의 올바른 경영 판단을 내릴 인물이 돼야 한다”며 “정치적 인물이 선임된다면 이런 덕목을 갖추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기업 KT가 다시 한국 ICT 생태계 맏형으로 거듭날 때 KT도, 한국경제도 재도약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