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넘기는 여행을 떠날 때는 꼭 챙겨야 하는 게 충전기가 됐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디스플레이가 잡아먹는 전력은 많아지는데 배터리 용량은 그리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페든, 학술회장이든, 노트북을 든 사람이라면 역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콘센트를 찾게 마련이다.
무한동력장치가 나오지 않는 한 에너지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집안의 각종 센서·자동차·스마트폰과 액세서리 등 만물이 전자기기화 되고 또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오면 전기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필요해진다. 데이터를 주고받는데 쓰는 주파수 대역도 대폭 커져야 한다.
우선 전기 부족 문제를 보자면 과학 법칙을 거스르는 무한동력장치는 개발이 가능할 리가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안다. 이런 가운데 석유·석탄은 고갈되고 원자력은 위험성 때문에 쉽사리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수력·조력·풍력·태양광 등 다양한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지만 효율이 높지 않고 에너지를 수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와 설비가 필요하다. 적은 동력을 쓸 때만이라도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도구가 없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게 바로 우리 인체다. 36.5도의 표면 온도를 가지고 항상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이 있으며 언제나 진동한다. 인체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면 웨어러블 컴퓨팅 시대에 배터리 충전에 대한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통신망 부족 사태를 해결할 대안도 인체에 있다. 복잡한 통신망을 피해 인체를 통신 매개체로 활용하는 `바디컴`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에너지 하베스팅
반도체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대회인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내년 발표되는 기술 중 흥미로운 주제가 `에너지 수집(하베스팅)`이다. KAIST·고려대학교 등 국내 연구팀도 이 주제에 대해 논문을 다수 냈다. 내년 발표될 논문에 따르면 압전소자를 이용해 입력 에너지를 증폭시켜 효율을 400% 이상 높일 수 있는 데까지 기술은 진보했다. 사람귀의 미세한 진동을 이용하거나 기기 주변 온도차를 활용해 유의미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일본 야마하 연구개발센터는 지난해 열전도소자를 이용한 `체온 발전` 시제품을 내놨다. 팔찌 형태 제품을 착용하면 체온을 전기로 전환해 센서를 구동시킨다. 체온·습도 등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무선 전송할 수 있다. 전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별도 배선이 필요하지 않고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충격 에너지를 압전소자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사람이 걸어갈 때 지면과 닿으면서 생기는 충돌 에너지를 압전소자를 이용해 발전하는 것이다. 물론 에너지 추출이 쉽지는 않다. 사람이 자전거를 돌리면서 생기는 회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면 하루에 약 2kwh 정도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걷는 건 상하운동인데, 이때는 전압이 높고 전류가 낮아 충전도 어렵고 자전거를 돌릴 때보다 효율도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효율이 점점 높아져 앞으로 기대가 되는 기술이다.
사람한테서 발생하는 정전기 역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에서 주목하는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다. 인체 주위의 전자파 진동을 이용하는 기술 역시 연구되고 있다.
◇인체 통신 기술
사람 몸은 전도체다. 라디오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을 때 안테나를 손으로 움켜쥐면 깨끗한 음질의 소리가 들려오는 경험을 한 번씩 했을 것이다. 신체가 훌륭한 통신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한 사례다. 사람 신체를 통신 채널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보안성은 강화하면서 전력 소비량을 낮출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고주파(RF) 안테나를 꽂을 필요가 없어 회로 개발도 간단하다.
인체통신기술은 1996년 미국 MIT가 처음 제안했다. 소니·마쓰시타 등 일본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10Mbps 속도를 내는 시제품까지 발표했다. 국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인체통신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목표는 최고 100Mbps 속도를 내는 인체통신 기술 개발이다. 100Mbps는 4G 이동통신 롱텀에벌루션 어드밴스트(LTE-A) 속도 규격이다.
지난해 말 마이크로칩이 출시한 바디컴(BodyCom) 칩은 집·사무실 등의 도어락에 바로 응용될 수 있다. 자동차 역시 스마트키를 대체해 차 주인이 다가가면 문이 열리고 자동차에서 멀어지면 잠그는 기술로 응용될 전망이다. 특수 장비나 총기, 컴퓨터 시스템 등 보안이나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기기를 사용할 때도 유용하다. 의료 장비나 운동기구에 센서를 달아 신체 신호를 바로바로 인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이어폰간 블루투스 장치없이 팔의 피부를 이용해 무선 전송을 하는 방법도 발표된 바 있다. 현실화가 된다면 응용처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한다. 우리 인체에 잠재된 가능성도 무한한 것 같다. 인체 활용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안전성 문제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만들어갈지 과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도 많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