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만명이 치른 한바탕 전쟁이다. 가족까지 합치면 수백만명이다. 진다고 목숨을 잃지 않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지니 저마다 필사적이다. 지난 7일 이렇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가히 `국가적 행사`다. 출근, 항공기운행 시간까지 조정한다. 경찰이 총출동한다. 수십년간 이랬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것을 놓고 찬반논쟁을 늘 반복했다. 내년 이맘때도 그럴 것이다. 학생을 온통 입시 전쟁터에 몰아넣는 틀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창의적 인재 양성 차원에서 획기적인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점에서 아주 낯선 주장을 하려 한다. 수능 핵심 과목인 수학 축소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 `가뜩이나 이공계를 기피하는데 말이 되는 얘기냐` 같은 힐난 섞인 반문이 벌써 들린다. 이공계 덕분에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다. 더 발전하려면 이공계 기초 학문인 수학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수능 수학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수학이 입시 과목인 것은 논리적 사고 유무를 판별할 기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수의 개념부터 함수, 미·적분, 확률까지 정연한 이치로 정립한 논리적 학문이다. 그런데 논리적인 것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은 별개 문제다. 논리적인 사람이 수학을 잘할지 몰라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논리적 사고 배양엔 수학보다 논리철학이나 사회과학 이론이 더 효과적이다. 어쩌면 글짓기나 토론이 더 낫다.
수학 교육은 이공계뿐만 아니라 경제·경영 등 일부 인문계열 전공자에게 필수다. 그런데 많은 대학생이 수학을 다시 배운다. 12년간 배웠건만 원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이다. 우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수학을 배운 미국 이공계 대학생이 고등수학과 창의적 문제 해결에 더 뛰어난 게 현실이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수학 교육을 필요 전공자에 집중하고 교과과정을 혁신해 질을 높여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 동네 학원의 반을 차지하는 수학이 원흉이다. 좋은 대학을 가려면 어쩔 수 없으니 죄다 다닌다. 인문·사회, 예체능 진학생도 전공, 진로와 상관없는 과목에 공부시간의 절반 이상을 쏟아야 한다. 고문이다. 교육의 기회비용 손실이다.
수학 대신 다른 수능과목이 생겨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기대보다 작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질적인 변화는 생긴다. 적어도 더 관련 있는 과목에 집중해 대학에서 더 수준 높은 학습을 할 수 있다. 교양 관련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으면 사회적 지식량은 증가한다.
수능 수학 줄인다고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것도 아니다. 수학이 어려워 문과를 갈 정도라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낫다. 이공계가 요구하는 인재가 아니다. 오히려 적성도, 관심도 없는 학생을 미리 걸러낼 수 있다. 조기 진로교육 효과다. 진로 고민 없이 무작정 진학한 대학생이 너무 많다. 수학 선택 여부로 진로 방향이 달라진다면 더 이르게,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융합형 인재 양성도 그렇다. 무엇보다 사실과 현상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는 인재다. 수능 수학 만점 받는다고 이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융합형 인재로 키우겠다면 문과 학생에 수학보다 기초과학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문과·이과 구분은 진작 폐지했어야 할 낡은 제도다. 정부가 결국 2021년 이후로 유보했다. 기존 틀을 깨는 게 이토록 어렵다. 수능 수학 축소라면 과도기적 해법이 된다.
문과생 골칫거리 과목 하나 없애자는 게 아니다. 전인교육을 표방하며 실제로 입시교육만 골몰하는 구조를 뜯어고칠 새 접근법을 고민해보자는 얘기다. 작은 변화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