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국 방문 때 참모가 꼭 챙기는 필수품이 바로 텐트다.
대통령 숙소와 가까운 방에 설치되는 이 텐트에 도·감청을 차단하기 위해 소음을 일으키는 각종 장비가 설치되고 바깥에서 내부를 볼 수 없다. 기밀서류 검토나 참모들과 민감한 대화는 모두 이곳에서 이뤄진다.
비단 대통령뿐 아니다. 미국 안보당국은 의원이나 외교관, 정책결정권자, 미군 지휘관 등도 해외에서 유사한 조치를 취한도록 요구한다. 적성국은 물론 서유럽 등 우방권도 손님을 감시한다는 점 때문이다.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금은 어디서든 우리가 목표가 되는 시대”라며 “중국이나 러시아, 아랍권 등 어떤 국가도 우리를 감시할 역량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전 시대에는 주로 숙소의 벽이나 조명장치 등에 감시 장비가 설치됐다. 하지만 최근 미국 지도자급은 숙소인 호텔을 향하는 무선신호를 더욱 걱정한다. 한 전직 관리는 “어떤 국가를 가든 숙소에 감시 장비들이 숨겨졌을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미국이 정확히 언제부터 해외 방문에서 비밀 텐트를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안보 당국은 조지 테닛 전 CIA 국장(1997∼2004년)이 이런 장비를 규칙적으로 사용한 첫번째 고위 관리였던 것으로 증언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특사 자격으로 중동에 장기간 머물며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수시로 만났으며 세계적 첩보능력을 갖춘 이스라엘에 핵심 정보를 도둑맞지 않으려고 특별히 조심했다는 것이다. 울시 전 국장은 자신이 국장으로 일할 때 미국이 기술적으로 다른 나라를 압도해 암호화된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예방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테닛 국장이 CIA 수장이던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중국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모든 미국 관리의 해외 방문에서 도청방지 텐트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휴대나 설치, 철거 작업도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최고위급 아래 단계에서는 텐트 대신 전화부스와 같은 소규모 장비가 활용된다.
백악관은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했을 때 텐트 안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과 리비아 공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사흘 뒤에는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유사한 장면의 사진이 촬영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국무부와 CIA,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등이 구체적인 언급을 거부했으나 수십명의 전현직 관리를 통해 미국 대통령이 해외 방문에서 상대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도청한 사실로 국제사회의 호된 비판을 받는 가운데 기존 관행의 재검토를 위해 오바마가 설치한 위원회가 이주에 예비 보고서를 내고 12월 중순까지 최종 보고서를 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