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우리는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되는 감동을 선물받았다. 김영희 PD가 연출하고 이경규가 진행했던 `양심 냉장고`다. 첫 회 양심 냉장고는 경차를 운전하던 장애인 부부에게 돌아갔다. 왜 정지선을 지켰느냐는 우문(愚問)에 “나는 늘 지켜요”라는 한 마디로 IMF로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뭉클함을 전달했다.
최근 경찰이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 단속을 시작했다. 벌점 10점에 과태료 6만원이라고 한다. 23일부터는 끼어들기와 교차로 꼬리 물기 단속에도 나선다. 최근 개인 일상은 물론이고 기업 활동 전반에 걸친 규제와 강제가 넘쳐난다. 기업이 각종 규제가 지나치다며 입법 유예나 적용시기 조정 등을 정부와 국회에 호소하는 상황이다.
우리 교통문화는 양심 냉장고가 감동을 주던 시기와 비교해 많이 변했다. 언제부터인지 서울 시내에서 경적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기 시작했으며, 합류 도로에서는 교차 진입이 일상화됐다. 오히려 이를 지키지 않는 차량에 질타의 시선을 보낸다.
기업 환경과 마인드도 많이 변하고 있다. 12일 전경련이 동반성장 지수 평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20% 이상의 업체가 유망 협력사를 강소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미흡하지만 동반성장이나 상생 등이 기업 영속성을 위한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는 중이다.
미흡한 사안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 강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하다. 하지만 수만 명의 경찰이 하지 못했던 것을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 같은 개인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규제나 강제가 가진 어떤 것보다 더 큰 사회적 합의와 견제라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강제는 오히려 이런 사회적 진화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