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회장이 12일 이사회에 사표를 내고 물러나면서 KT는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표현명 T&C부문장(사장)의 비상경영 체제 하에서 이 회장이 추진했던 신사업은 당분간 뒤로 밀려나고 실적을 방어하기 위한 보수적인 경영 방향이 예상된다. 사임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따라 `경영진 리스크`는 계속될 전망이다.
◇`표현명 대행 체제` 향배는
비상경영 체제 하에서 KT는 회사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표 사장이 CEO 직무대행을 맡지만 단독 의사결정이 아니라 그룹 내 사장·부사장급 여러 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경영위원회`가 꾸려질 전망이다. 비상경영체제이니 만큼 전통적인 유·무선 가입자 이탈 방어와 검찰 수사로 불거질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KT는 지난 2008년 남중수 전 사장이 사퇴했을 당시에도 이 같은 비상경영 체제를 꾸린 바 있다. 당시 서정수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부사장 5인을 포함한 비상경영위원회를 3개월간 운영한 바 있다. KT 한 관계자는 “비상경영체제 하에서는 새 CEO 선임 전까지 회사를 `유지`하는 데 경영 역량이 집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통신사업 실적 하락세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회장이 검찰의 1차 압수수색 전인 지난 9월 30일 `4분기 영업전략 발표회`에서 전시 체제를 선언할 만큼 실적이 악화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시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 회장이 주문한 영업시스템 강화 전략이 계속 유지될지 미지수다.
유료방송법 개정안이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등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관련 법규·제도 개선에 대한 대응력도 상당히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찰 수사, 임직원 구속까지 가나
KT를 향한 검찰의 칼끝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 25일 이사회 당시만 해도 `참여연대의 고발에 따른 단순한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여연대가 고발한 배임뿐 아니라 임원의 급여를 다시 회수하는 방식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 정황까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차관급 인사 H씨, 현직 야당 주요 당직자 등 구체적인 인물도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사임 후 검찰이 본격적인 소환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KT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검찰이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한 것은 그만큼 추가적인 의혹을 발견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김일영 사장 등 최측근이 우선 소환되고 이 회장도 소환 조사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구속 수사 가능성도 거론된다. 배임이나 비리의 증거 인멸 우려가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 회장 측근이 검찰에 구속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직 임원이 구속되면 KT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반면에 “검찰의 연이은 압수수색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 CEO, 이사회의 선택은
KT 이사회는 다음 주 초 CEO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사회는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이후 KT의 수장이 정치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남중수 전 사장에 이어 이 회장 체제까지 `정권 교체→CEO 검찰 수사→사임 후 친정권 인사 부임`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면서 `낙하산 인사`에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에서 쉽게 친정권 인사를 추천하도록 이사회를 압박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따라서 이 회장의 고교·대학 동문이나 전 정권에 가까운 인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반기`를 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낙하산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정치권의 입김이 제한되고, 새 CEO를 선임하는 데 이사회가 주어진 권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표현명 사장이 CEO 자리를 물려받을 가능성도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