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도청` 막을 양자정보통신 생태계 조성 `급물살`…범국가 프로젝트 시급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도청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국내에서도 도·감청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양자(퀀텀) 정보통신기술 개발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통신업계가 그동안 연구개발(R&D)에만 그친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는 한편 정부와 국회에서도 별도 예산 편성까지 추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미 양자 정보통신기술을 상용화한 미국·일본·유럽 등과 기술 격차가 커 더욱 공격적인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운영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양자 암호통신 개발을 위한 별도 예산 책정과 국책과제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국회운영위원회는 아직 용처가 결정되지 않은 수백억원 규모 예비 예산 중 일부를 양자 정보통신 R&D에 투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국방위는 12월 양자 암호통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다. 국회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세미나는 군통신망을 도청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양자 암호장비 개발 국책과제를 선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국회는 NSA가 우방국 국가원수 통화를 감청한다는 보도 이후 이 같은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NSA 도청 대상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통신장비 적용을 위한 양자이론 기반 퀀텀리피터 기술연구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요소기술 개발 △양자통신을 위한 기반 기술 연구를 고도화한다.

업계와 학계에서 양자 기술과 관련해 보다 세밀한 R&D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접수됨에 따라 최근 `양자 정보통신 발전 기본 계획 수립` 등 국가 차원 사업이 가능한지 검토에 들어갔다.

민간에서도 양자 정보통신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양자 암호통신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SK텔레콤은 2014년 말까지 국산 양자 암호장비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이미 내년 R&D 예산 할당을 완료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최근 양자기술센터 설립 등 양자 정보통신기술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민관이 같은 목표 아래 양자 정보통신 생태계 조성에 나섰지만 여전히 선진국과는 격차가 벌어져 있어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범부처가 참여하는 국가 사업화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미국, 일본, 호주, 독일, 프랑스는 이미 양자 암호통신 관련 상용 제품을 출시했다. 중국에서는 최근 2년 동안 4개의 양자 암호 상용장비 회사가 새로 출범했다.

중국은 2016년, 캐나다는 2017년 양자 암호키 분배를 위한 통신위성을 발사할 예정이고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양자 암호 관련 위성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산 위성을 컨트롤하는 암호·보안기술도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해도 최소 7~8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방, 국가정보기관, 금융 등 민감한 정보가 오가는 네트워크에 양자 정보통신이 필수가 돼 이 분야에 국가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 정보통신 관련 한 대학교수는 “양자 컴퓨팅 등 기초 기술을 대학과 출연연에서 연구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논하기도 힘들 정도”라며 “D-Wave(양자 컴퓨팅) 상용 장비는 구글, NASA, 록히드마틴에서 사용할 정도로 사업성이 커 과감한 투자를 발판으로 각각 기술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성 SK텔레콤 ICT기술원장(퀀텀정보통신연구조합 이사장)은 “국내 ICT 인프라와 양자 기술 역량을 합치면 이른 시간 내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며 “양자 정보통신기술에서 신산업 발굴과 관련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 용어설명

양자 정보통신=양자 암호통신, 양자 컴퓨팅 등 양자 관련 정보통신기술(ICT)을 총칭한다. 양자 암호통신은 양자 기술로 생성한 암호키를 송수신 측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간에 도청이 있어도 암호키 자체가 손상돼 탈취한 쪽에서 내용을 알 수 없다. 도·감청을 원천 차단하는 대안으로 꼽힌다. 암호키 숫자를 최대한 길게 설정해 이를 풀기 어렵게 만드는 기존 통신 보안 방식은 컴퓨팅 속도 향상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한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