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건물 내 정보통신설비 설계와 감리를 통신 전문가가 아닌 전기 전문가도 맡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사 등 전문가 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母)법인 건축법 위반 소지가 커 위법 공방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18일 통신업계와 정부 당국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전화 △초고속 정보통신 △지능형 홈네트워크 △공동시청 안테나 및 유선방송 수신설비 설치 관계전문기술자 범위를 건축전기설비기술사까지 확대했다.
개정령 초안에는 정보통신기술사만 지정했지만 입법 과정에서 전기 전문가가 추가된 것이다. 건축전기설비기술사가 관행적으로 정보통신 설비를 담당해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해당 개정안은 한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11월 현재 국토부 규제개혁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정보통신 업계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보통신 전문가가 실내 정보통신기술(ICT) 설비를 담당하게 하는 최초 입법 취지가 손상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국토부는 기존 건축법이 정보통신 쪽 관계전문기술자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정안을 마련해 왔다.
남우기 정보통신기술사회 부회장은 “입법 과정에서 전기 쪽 의견을 계속 반영하다 보니 오히려 개정안이 기존 법안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부실 설계로 인한 품질 저하는 물론이고 국가기술자격 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개정안이 상위법을 위반할 소지도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건축법은 건축물 구조·설비 등 전문 분야에 관계전문기술자를 두고 위법·부실시공을 방지하도록 명시했다. 관계전문기술자는 건축물 구조, 설비 등과 관련된 전문기술자격을 보유한 사람으로 제한했다.
정보통신업계는 건물 내 정보통신 설비 관계전문기술자가 정보통신기술사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건축전기설비 분야와 정보통신설비는 같은 분야라고 할 수 없어 건축전기설비기술사가 통신설비 분야에 자격이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자격기본법, 국가기술자격법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건축전기설비기술사가 관행적으로 건물 내 정보통신설비를 담당해 왔다는 전기 측 해명도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보통신기술사회가 최근 전국 151개 공공기관 정보통신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정보통신공사 설계·감리용역 발주를 건축전기설비기술사에게 맡긴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토부는 논란이 일자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양측 이해관계가 첨예해 관계전문기술자 제도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차원에서 다시 입법안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령의 건축법 위반 소지에 대해 “건축 내 정보통신 구축은 하드웨어 중심 설비가 대다수로 건축전기설비기술사가 이를 담당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이해관계 진영 사이 접점을 찾으려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보통신공사협회 관계자는 “건축 내 정보통신설비가 점점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추세에 발맞춰 관련 전문가 풀을 지정하는 것이 원래 법 개정 취지”라며 “정보통신설비에 사실상 무자격자인 건축설비기술사가 설계·감리 전문가로 참여하는 것은 국가기술 자격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 초안/수정안 비교, 출처: 국토교통부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