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60>ETRI, 퀄컴을 쏘다(중)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제소하는 길 밖에 없다.”

1998년 4월 10일.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현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고문)은 이날 원장실에서 대책반으로부터 미국 퀄컴과의 CDMA 기술료 협상 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판단했다. 취임 10일 만이었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160>ETRI, 퀄컴을 쏘다(중)

정 원장의 증언.

“대책반의 보고를 받아보니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퀄컴과 더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퀄컴은 ETRI를 우습게보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ETRI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공동기술개발계약(JDA) 조항에 따라 ICC로 가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어요.”

정 원장은 문득 과거 일이 생각났다.

정 원장은 CDMA 개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정 원장은 1990년 ETRI 위성통신연구단장으로 130억원을 들여 이탈리아 알레니아 스파지오와 무궁화위성용 행정통신지구국시스템(DAMA-SCPC) 공동개발을 진행했다. 1991년부터는 140억원을 투입해 캐나다 MPR와 지속데이터건용국지구국 시스템(VAST) 공동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1990년 11월 어느 날.

경상현 당시 원장(정통부 차관·장관 역임, 현 ICT대연합 회장) 지시로 이혁재 무선통신연구부장(현 KAIST 명예교수)이 그를 찾아 왔다. ETRI와 퀄컴 간 CDMA 공동연구 1단계 과제계약서 초안을 검토해 달라고 온 것이다. 정 단장은 외국 업체와 무궁화위성 공동개발 연구를 추진해 계약업무를 잘 알고 있었다.

정 원장과 이 부장의 대화 내용.

△이혁재 부장=경 원장께서 “정 단장의 국제 공동개발 계약서를 참고하라”며 초안 내용을 논의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것이 CDMA 공동개발 1단계 계약서 초안입니다.

△정선종 단장=아니 50쪽 계약서로 되겠어요. 최소한 600쪽은 돼야 할 것 같은데 초안은 누가 만들었나요.

△이혁재 부장=내가 만들었습니다.

△정선종 단장=전문 변호사 검토를 받아야지요. 자문료는 얼마나 되나요.

△이혁재 부장=40만원 잡혀 있습니다.

△정선종 단장=그걸로는 태부족이요. 무궁화위성 지구국 한 건당 1500만원씩 지불했어요.

그게 8년여 전 일이었다.

정 원장의 회고.

“당사자 간 협약서는 초안을 누가 작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령 초안을 `갑`이 작성해 `을`이 검토한 후 양측이 서명하면 `을`이 `갑`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협약서는 그 분야 전문변호사의 세밀한 검토가 필수입니다. 퀄컴은 당시 기술에 정통한 특허 전문 변호사를 7~8명 고용하고 있었어요. 퀄컴이 작성한 J`DA 초안을 ETRI 자문변호사가 검토해 추인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당연히 협약 내용이 퀄컴 주도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5월 25일.

정 원장은 퀄컴을 CDMA 기술료 분배금에 관한 계약위반으로 ICC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동안 양승택 원장(ICU 총장·정통부 장관 역임) 시절 두 번의 협상을 하면서 퀄컴에 여러 차례 ETRI 입장을 전달했고 기술료 지불을 요구했지만 퀄컴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협약서 조항을 구실로 기술료 배분을 무효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정 원장의 말.

“원장 자리를 걸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소송 기간이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막상 소송한다니까 여기저기서 소송 포기 압력을 넣더군요. 퀄컴을 잘못 자극하면 국내 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혁재 부장의 말.

“정 원장은 국제 협약관계를 잘 알고 있었어요. 더욱이 그는 CDMA 개발과 무관했습니다. 정 원장이 퀄컴과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다면 소송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정 원장으로선 자리를 건 소송이어서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어요.”

대책반에 참여했던 H씨의 회고.

“정 원장은 미국 기업과 협상을 통한 해결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소송이 최적의 해결 방안이라고 판단했어요.”

정 원장이 국재중재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는 JDA와 실시권협약(LA)을 세심하게 검토한 결과 몇 가지 불평등 조항이 있다고 확신했다.

우선, 협약은 공용 기술표준어로 명확하게 규격화해야 하는데 불분명한 표현으로 양측의 해석이 달랐다. 셀룰러와 PCS가 그 예다. 둘째, 공동개발 투자액은 나중에 기술개발이 성공할 경우 소유권 분배의 기준임에도 JDA에는 투자한 자산을 정확히 계량하지 않았다.

정 원장의 주장.

“퀄컴은 CDMA 특허기술과 인력·장비를 투자했고 ETRI는 무선망기술과 TDX교환기술, 망운용 소프트웨어(SW), 인력과 현금 26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ETRI가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협약서에 `을`이 된 것은 잘못입니다. CDMA 기술의 당시 시장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지적자산 투자로 환산했다면 퀄컴이 `을`이 되고 ETRI가 `갑`이 되는 게 타당합니다. ETRI가 특허 이전료를 일시불로 지불했고 개발공헌도를 따져도 ETRI가 배분료를 많이 받는 게 옳다고 봅니다. 당시 이원웅 박사가 5 대 5를 주장했는데 거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퀄컴과 협상 책임자였던 이원웅 부소장(인천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역임)은 1992년 1월부터 4월 말까지 3차에 걸쳐 퀄컴과 기술료 배분협상을 벌였다.

이 전 부소장의 증언.

“퀄컴에 CDMA는 공동개발인 만큼 양측이 로열티를 5 대 5로 분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은 기업에서 대학 등에 연구비를 기부하고, ETRI도 연구기관이니 기부형식으로 절반을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퀄컴은 우리의 TDX-10 기술을 다 넘겨 달라고 요구하더군요. 이를 수용하지 않자 퀄컴은 로열티를 85 대 15 비율로 하자고 주장했어요. ETRI는 70 대 30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막판에 양측은 80대 20으로 최종 타결했습니다.”

막상 외풍을 막고 소송을 제기하려고 보니 소송료 34억원 마련이 급선무였다. ETRI 예산에서 이 돈을 사용하려면 항목을 변경해야 하는데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했다. 내부 논의 끝에 이 문제는 염상원 총무부장(현 책임행정원)이 기관 관리비 중 예비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해 6월 9일 대책반은 정 원장 지시로 국내 10개 법률사무소에 자문용역 제안요청서를 보냈다. 대책반은 상위 점수를 얻은 3개 업체를 선정해 이들에게 퀄컴 대응전략 등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또 공개입찰을 거쳐 법무법인 태평양을 적격자로 선정해 소용비용 등을 검토했다. 그해 7월 16일 ETRI는 소송 주관 변호사로 법무법인 태평양 오양호 변호사와 황보영 변호사(작고)를 선임했다.

그해 8월 19일 ETRI는 퀄컴대책반을 재구성했다. 반장은 정 원장이 직접 맡았다. 반원은 이혁재 무선방송기술연구소장, 이성국 기획관리부장, 한기철 부장(현 책임연구원), 김대식 실장(현 책임연구원), 황춘식 실장(현 경영관리본부장) 등이 참여했다.

정 원장은 수시로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제소에 따른 각종 소송 전략을 결정했다. 미국 현지 소송대리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CHRM법률사무소를 선정했다.

현지 변리자문은 워싱턴에 살던 이종삼 박사(작고)의 추천으로 안토넬리를 선정했다. CDMA 대가로 불리는 이종삼 박사는 미 워싱턴대, 카롤릭대 통신공학 교수를 역임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JSLEE 어소시에이트와 흥창 사장을 지냈다.

정 원장의 증언.

“이종삼 박사는 퀄컴과 기술료 소송과 관련해 무료로 많은 자문을 해주셨습니다.”

그해 8월 28일.

정 원장은 김형오 의원(국회 과기정위원장·한나라당 원내대표·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을 방문했다. 김 의원은 1997년 국정감사에서 퀄컴의 기술료 배분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후 국정감사나 상임위에서 이 문제 해결을 계속 정부와 ETRI 측에 촉구했다.

김 전 의장의 회고.

“국감에서 처음 기술료 배분문제를 제기했더니 ETRI나 정통부에서 내용을 알면서도 쉬쉬했고 소극적으로 대처했어요. 이후 ETRI와 정통부 실·국장한테 공적, 사적으로 수없이 해결을 독려했어요. 변호사도 대형 로펌의 국제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강조했어요.”

정 원장은 이날 김 의원에게 그간의 추진경과와 제소 방침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정선종 원장=퀄컴이 기술료를 주지 않을 생각인 듯합니다. ICC에 제소해야 일부라도 받을 것 같습니다. 의원님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김형오 의원=야당 의원이 힘이 있습니까(당시 김 의원은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정선종 원장=무슨 그런 말씀을…. 많은 도움을 부탁합니다.

△김형오 의원=국익을 위한 일인데…. 잘 알겠습니다. 소신껏 하십시오. 힘껏 돕겠습니다.

이후 ETRI는 본격적인 소송 작업에 착수했다. 공동개발 시작부터 사업 진행과정, 양측이 주고받은 문서까지 하나하나 검토했다. 변호사들의 요청에 따라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진들이 퀄컴과 주고받은 편지나 메모까지 취합했다.

한기철 부장의 말.

“철저한 소송준비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일했습니다. 변호사들의 요청에 따라 바인더 15권 분량의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퀄컴과 일전을 앞둔 ETRI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한 만큼 반드시 승소해야 했다. ETRI와 국익을 위해서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