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 전통산업과의 융합 등 현 정부 들어 부각된 국가 주요 어젠다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SW)가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는 가솔린이 아니라 SW로 달린다”는 디터 제체 메르세데스 벤츠 회장의 말처럼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자동차·의료·조선·국방 등 다양한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모두 SW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최근 산업계·학계·정부 할 것 없이 SW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다양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국 단위 SW 전담조직을 만들고 SW 혁신전략을 발표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도 SW 전문 인력을 대거 충원하고 대학과 협력해 인력양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SW 학계나 업계 전문가를 만나 보면 저마다 나름의 SW 산업 육성대책을 제시하곤 한다. 모두다 SW 산업 발전에 도움 되는 좋은 의견이다. 그러나 어떤 산업이든 품질을 확보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중에 기본인 SW 품질 확보와 관련한 대책은 보기 드물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발표에 따르면 SW 품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SW 공학 수준이 미국을 100으로 볼 때 인도가 80점대, 우리나라가 50점대 수준이라고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는 10년 이상 SW 시험인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간 경험으로 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산 SW 품질이 선진국보다 현격히 낮다. SW 시험인증 과정에서 발견되는 결함은 SW 제품당 평균 40여개, 많게는 200개 이상 발견된다. 이것이 우리 SW 제품 수준이다.
품질 문제는 정보화 시스템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개발 완료된 대형 정보화 시스템은 시험 과정에서 수백, 수천 개의 결함이 발견된다. 이로 인해 사업 종료 후에도 하자보수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된다.
문제 원인은 우리 SW 산업 현실을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내 SW 기업 조사 결과, 품질 전담 조직을 둔 기업은 20%에 불과하다. 전담조직이 없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품질 확보를 위한 노력과 투자는 낭비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품질 문제로 인한 비용은 으레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SW 인력 가운데 37.5%가 품질을 담당한다고 한다. 라이온브리지(Lionbridge)·소제티(SOGETI)·인터텍(INTERTEK) 등 품질시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도 즐비하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오라클 등 글로벌 SW 기업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시험 전문 기관과 기술제휴관계를 맺고 전문적이고 철저한 품질 검증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최고 SW 강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SW는 우리 경제와 사회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높은 수준의 SW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도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큰 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 서울시 신교통카드시스템 오류, 도쿄증권거래소 거래정지, 도요타 리콜사태 등이 SW 결함으로 인한 대표적 사고다. 중요한 것은 SW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우리 생활과 직접 연관돼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안전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높은 수준의 SW 품질을 확보하는데 발 벗고 나설 때다. 품질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안전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더 늦기 전에 중지를 모으고 다양한 대책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머지않아 SW 강국, SW 품질 강국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임차식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csleem@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