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패널(TSP)에 쓰이는 터치칩을 표준화했다. 터치칩 같은 아날로그 반도체를 표준화해 하드웨어 플랫폼을 통일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중심으로 하드웨어를 플랫폼화해 특정 부품 공급 부족 사태를 막고, 시장 대응 속도를 더욱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갤럭시S4 개발부터 터치센서 칩 패턴을 표준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갤럭시노트3에도 표준화된 터치칩이 적용됐다.
그동안 삼성전자 전략 스마트폰용 터치칩은 시냅틱스·아트멜·싸이프레스·멜파스 네 회사가 번갈아 가면서 공급했다. 회사마다 고유 알고리듬이 있고, TSP 센서 패터닝도 달랐기 때문이다. 네 회사는 서로 경쟁하면서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델 수주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터치칩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다른 회사 제품으로 대체하는 데 골머리를 앓았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다른 부품과 달리 조달 문제가 발생해도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갤럭시S4부터 터치칩이 상당 부분 표준화되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됐다.
시스템반도체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삼성전자가 사용자환경(UI) 등 특정 기준을 만든 후 4대 터치칩 업체끼리는 대체 가능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상당한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을 축적하지 않았다면 이런 플랫폼 전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AP를 중심으로 카메라모듈·디스플레이 등 부품 구성품만 바꿔 출시하는 방식의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이 둔화되면서 지역별 소비자가 요구하는 기능을 먼저 포착해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아날로그 반도체까지 하드웨어 플랫폼 범주에 포함되면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략은 한 층 더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다모델 전략으로 삼성전자를 추격하고 있는 애플과도 더욱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들은 수익성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갤럭시S 시리즈 같은 플래그십 모델 하나만 잡아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칩 업체 간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무선사업부 하드웨어 플랫폼 덕분에 여러 아날로그 반도체를 더욱 빠른 속도로 국산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서 협력 칩 업체는 지식재산(IP)뿐 아니라 상당 부분의 노하우도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외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칩을 국산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힘들게 칩을 개발한 국내 업체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