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밖에서 많이 놀아본 아이일수록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진짜 일을 즐기면서 해낼 수 있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뛰어나게 발달한다. 우리말로 손재주꾼으로 번역되는 브리꼴레르 역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에 해당된다. 브리꼴레르는 주변에 있는 재료와 도구를 활용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척척 해결하고 위기상황을 식은 죽 먹듯 탈출하는 사람이다. 브리꼴레르는 도구의 부족이나 환경의 열악함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현재 가용한 도구만 갖고도 얼마든지 변용해서 재미있게 논다. 그런 놀이 속에서 이전과 다른 창의성이 싹트고 틀에 박힌 일상을 일탈해 삶을 숙제가 아니라 축제로 변모시킨다.
브리꼴레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여주는 예술가다. 놀이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는 모든 행동을 지칭한다면 브리꼴레르는 주변에 널려있는 하찮은 것들을 주워모아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그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꾸어 신나게 노는 브리꼴레르들이다. 창작은 모두 충분하지 못한 재료와 시간, 좋지 못한 환경과 여건을 이겨내고 이리저리 시도하다 어느 순간 불현듯 일어난다.
놀아야 진짜 놀지 않는다. 신나게 놀아야 나중에 눈물 나게 놀지 않는다. 노는 사람이 삶을 바꾸고 숙제를 축제로 바꾼다. 새로운 것의 창조는 지성이 아니라 놀이 충동에서 생겨난다. 창조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대상과 함께 논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말이다. 이 시대 최고의 성현은 `공자`와 `맹자`도 있지만 `놀자`와 `웃자`도 있다. 어린아이처럼 놀면서 웃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함과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이 세상을 바꾼다. 어린 예술가가 상상력의 텃밭에서 기상천외한 상상의 싹을 틔우려고 할 때 어른 판사가 나타나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안 된다고 한다면 상상력의 싹은 자라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