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해진 의장은 왜 일본서 공개석상에 섰나

지난 수년간 네이버에 대한 업계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밖에서는 `네이버스럽다`는 표현이 나돌 정도로 벤처 정신이 사라졌다, 완연한 대기업이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쟁사의 혁신적 서비스를 재가공하는데 바쁠 뿐 창조 정신이 흐려졌다고 말한다.

지난 25일 이해진 의장은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가입자 3억명 돌파 행사장에 등장해 그동안 네이버가 겪어온 여러 문제를 에둘러 지적했다. 최근 라인, 캠프모바일, NHN엔터테인먼트로 각 사업을 분사해 거대해진 조직의 둔한 움직임을 깨뜨렸고, PC검색에 안주한 분위기에 맞서 모바일 환경 선점에 나선 것도 그의 결정이다.

이 의장은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잡은채 조용하게 지난 수년간 일본에서 겪은 `고생담`을 털어놨다. 한국의 손꼽히는 부자가 됐고, 네이버는 시가총액 20조원의 대기업이 됐지만 일본에서 이 의장과 핵심 멤버들은 다시 네이버를 시작한 그 때로 돌아간 듯했다.

이해진 의장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1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 중 새로운 시도는 한국이 아닌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하겠다는 상징성이 가장 크다. 대기업 네이버가 아닌 작고 영민하게 움직이는 벤처기업으로서 유수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역차별을 딛고 이만큼 성장했다고 보여주는 후련함도 담겼다.

이해진 의장을 보면서 정부 규제와 역차별로 함께 고생해온 게임업계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정주 넥슨 회장은 게임사업을 넘어 연관 시장으로 영역 확대를 시도 중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글로벌 온라인게임 개발사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사업과 신작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동안 인터넷·게임 업계에서는 왜 업계 대표 오너 CEO들이 정부 규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많았다.

`해외서 계속 실패해서 나올 수가 없었다`는 이 의장에 말에 비춰보면 게임업계의 대표들도 아직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내년에는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후배들을 독려하며, 정부에 쓴소리도 거침없이 하는 따뜻한 게임계 대표들의 모습을 보고싶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