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물류회사 가운데 하나인 페덱스에는 `1:10:100의 법칙`이 있다. 불량이 발생해 즉각적으로 고치면 1의 원가가 들지만, 책임소재나 문책 등의 이유로 숨기고 기업 밖으로 나가면 10의 원가가 든다. 이것이 고객 손에 들어가 불만과 항의로 이어지면 100의 원가가 든다는 법칙이다.
이는 제조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개발 단계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1의 비용이 들지만, 출하 단계에서 확인하면 10의 비용이 든다. 만약 소비자까지 문제를 인지하면 100의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제품 품질이나 신뢰성 확보 노력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중요한 과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도요타 리콜사태는 이 법칙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가속페달 부품 결함 하나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를 계기로 기업은 물론이고 일반 소비자까지도 제품에 사용되는 소재부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제품 품질은 대부분 구성 소재나 하위 부품 신뢰성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소재부품 산업에 관심을 갖고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이유다.
민간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소재부품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제대로 된 소재부품을 사용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잊지 않고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국가 기간시설도 민간 기업처럼 치열하게 소재부품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일반 소비재에 결함이 발견되면 기업은 비용을 들여 리콜이나 사후서비스(AS)로 바로잡을 수 있다. 국가 기간시설 결함에는 두 번의 기회가 있을 수 없다. 나로호 발사 연기, KTX 열차의 빈번한 고장, 한국형 유도 미사일 `홍상어` 시험발사 실패 등은 모두 그 원인이 소재부품 결함 때문이었다.
사전에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후에 바로잡는 데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야 한다. 최근에는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까지 겹쳐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이 열 번 통화 중 한 번 불통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비행기가 1만 번 착륙 시도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민간 소비재에 비해 국가 기간시설 결함은 한번 발생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한다.
이를 결정짓는 소재부품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문제가 드러나는 `잠복기`가 길기 때문에 사전 검증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막대한 책임감을 갖고 기간시설 안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 기간시설은 연구개발 초기 단계부터 소재부품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 이미 운영 중인 기간시설은 소재부품 신뢰성 확보를 위한 검증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국내 시험인증 업무는 대개 외국계 기관에 의해 처리되는 실정이다. 시험인증산업이 낙후돼 고급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관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1위 규모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연매출은 1000억원으로 수조원에 이르는 해외 대형 인증기관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제3차 소재부품발전기본계획`을 수립, 발표했다. 기존 주력 제조업은 물론 융합·해양플랜트·우주항공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과 미래 전략산업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기본계획 실행과정에서 소재부품 국산화와 더불어 시험인증 국산화도 함께 강조돼야 할 것이다. 우수한 소재부품이 만들어져도 국제표준 적합성을 증명할 우리 기술이 없다면 해외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소재부품과 시험인증산업이 제조업 발전을 견인하는 창조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남궁민 한국산업기술시험원장 mng1218@ktl.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