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공학 분야 대한민국 대표 단체로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역할도 재정립하고 외연도 확대하겠습니다.” 안치득 한국방송공학회 차기 회장(57·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장)이 새로운 방송공학회 시대를 선언했다. 안 회장은 지난 달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정식 인준을 받았다. 내년부터 1년 동안 방송공학회를 이끈다. 올해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워밍업을 마친 상황이다.
“위상을 높이는 게 급선무입니다. 방송공학회는 학회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주로 학계와 연구계 중심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과 떨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산업계와 적극 연계하고 케이블업체를 포함한 방송·콘텐츠업체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탄탄한 전문가 풀을 만들어 방송서비스 발전에 기여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안 회장은 아직 아이디어 단계지만 학회 이름까지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방송미디어공학회`가 어떨까 합니다. 방송서비스는 크게 콘텐츠 제작, 프로세싱, 전송과 전달, 소비 단계를 거쳐 실현됩니다. 지금까지 학회는 주로 전송과 전달과 관련한 기술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제작과 콘텐츠 패키징 영역은 상대적으로 취약했습니다. 내년부터는 방송서비스 모든 단계를 아우를 수 있도록 영역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한 마디로 공학회가 주는 엔지니어링 냄새를 좀 지우고 방송산업 기반의 학회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안 회장은 특히 콘텐츠 유통에 필요한 기술적 표준을 확립하고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인터페이스는 멀티미디어, 오디오와 비디오 기술 등 무궁무진한 분야가 펼쳐져 있다.
안 회장은 국내에 손꼽히는 멀티미디어 방송통신 기술 전문가다. ETRI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MPEG코리아 포럼 의장을 맡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공학회를 맡기 전에는 실감미디어포럼을 이끌었다. 학계와 연구계 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신임이 높아 단체장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학자지만 뚜렷한 정책 철학도 가지고 있다. 90년대 중반 디지털TV 전송방식을 놓고 산업계가 사분오열되었을 때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소신있게 행동한 스토리는 지금도 심심잖게 회자된다.
“1990년대 후반 디지털TV 표준을 확정할 때 유럽식이냐, 미국식이냐를 놓고 정부·방송·산업계 입장이 확연하게 엇갈렸습니다. 사생결단 수준에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당연히 국책연구기관인 ETRI도 깊숙이 개입돼 있었는데 당시 주무 부처인 정통부는 은근히 산하기관에 특정 표준을 지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중립 의견을 고수했는데 그게 좀 이슈가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판단해도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이 정치적인 입장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결국 시장과 산업이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방송공학회는 내년 출범 20주년을 맞는다. 20주년을 맞는 안 회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TV는 20년 단위로 기술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첫 전파를 쏘와 올린 이 후 흑백에서 컬러TV로 바뀌었고 지금은 디지털 시대까지 와 있습니다. HD방송이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내년에도 3D뿐 아니라 UHD방송, 홀로그램, 통신과 방송 주파수 공방, 방송통신 융합 등 현안이 첩첩산중입니다. 방송공학회도 비록 학술적인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혼란한 시장에서 전문 학회로서 정체성을 찾고 분명한 역할을 정립해야 합니다.” 안치득 회장은 “방송시장은 기술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이슈가 공존하는 특수성이 있다”며 “정치적인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공학적 리더십`를 세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