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이맘때쯤 휴대폰을 교체한 적이 있다. 당시 휴대폰 단말기 실제 구입비용이 얼마가 되는지를 결정하는 방식은 꼭 `007 시리즈`에 나오는 첩보작전과 유사했다. 판매점 직원은 우선 가입 유형을 물어본 후 새로 출력한 따끈따끈한 종이 위에 적힌 정보에 기초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한 다음, 알맞은 통신사와 요금제를 선택하라고 알려주었다. 결국 소비자는 결단의 순간에 정보의 부재로 판매점에서 권유하는 요금제와 단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판매점은 소비자들에게 은연중 3개월 동안 부가서비스 의무사용 등을 강권하기도 한다.
컴퓨터와 자동차 구매 사례를 보자. 컴퓨터를 구매할 때 나는 먼저 인터넷 검색을 한다. 검색을 하면 현재 컴퓨터의 부품별 가격이 어떻게 되고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가격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어디에서 구입하는지는 부차적인 일이 되고 결국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 구매도 비슷하다. 자동차 가격은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이 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접근성, 대리점별 추가 서비스 경쟁을 통해서 자동차 구입에 대한 최종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다.
단말기유통법의 주요 내용 중 `보조금 공시를 통한 투명성 제고`는 이통사가 홈페이지 등에 단말기별 출고가, 보조금, 판매가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대리점, 판매점별로 이통사 공시 보조금 이외에 일정 범위 내에서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되, 대리점·판매점의 추가보조금 규모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매장별로 단말기에 대해 약정 시 할인금액, 최종 단말기 지급액 등을 명시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쉽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단말기를 구입하지 않을 경우 요금할인을 제공하는 SIM요금제가 일반화돼 있다. 미국 T모바일은 `SIM-only 요금제(단말기 보조금 없음, 요금 추가할인)`를 도입한 후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해 2012년 말에는 총 600만 가입자로 전체 후불 가입자의 30%를 차지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3년부터 보조금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SIM-only 요금제만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에서의 단말기 보조금 경쟁은 이용자의 요금 부담과 단말기 비용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소비자는 신규 단말기 출시에 민감해 단말기를 교체하는 반면에 다른 소비자는 단말기 교체보다는 추가요금할인을 원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단말기유통법의 주요 내용 중의 하나인 `서비스 가입 시 단말기 보조금 또는 요금할인 선택제`는 다양한 선호를 가진 소비자에게 적절한 선택권과 혜택을 줄 수 있는 제도라 생각한다.
고가의 이동통신 요금제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많은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하는 상황이라 법안이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비용을 증가시키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도 있다. 이 우려는 단말기 유통법 중 `보조금 부당 차별 금지`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보조금 부당 차별 금지`는 이용자의 가입유형(번호이동, 신규가입, 기기변경 등), 요금제, 거주지역 등의 사유로 부당하게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차별적 지급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요금제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을 합리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허용한다.
따라서 정부는 향후 저가 요금제 사용자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시행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김원중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jkim72@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