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왜 생겼을까. 한 방송보도에 의하면 1853년 미국 오티스가 엘리베이터를 처음 개발했을 때 속도가 너무 느려 사람들의 불만이 많았다. 속도를 높이는 개발은 많은 시간과 돈·기술이 필요해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는 한 여성의 아이디어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달아 불만을 해소했다. 거울을 보고 외모를 추스르는 동안 느린 속도에서 오는 지루함을 잊게 된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 사례지만, 이는 기술자와 비(非)기술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융합한 결과다. `속도가 느려 지루한 시간`을 `용모를 다듬는 시간`으로 새로운 가치창조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싶다. 고객 불만이 속도보다는 지루함 때문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혁신이 가능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혁신 과정에서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의 역할을 엿볼 수 있다. 동종 교배보다는 이종 교배에서 더 우수한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보통신기술(ICT)로 촘촘히 연결된 스마트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와 달리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단순히 시장조사를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에게 물어서 원하는 제품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제품이 만들어질 때쯤이면 고객은 또 새로운 것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잠재적인 욕망을 찾아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는 애플과 카카오톡이 성공한 이유기도 하다.
ICT 분야 대형 기술개발 과제 가운데 수요가 분명했던 전전자교환기(TDX)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개발 사업은 크게 성공한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업은 사장되고 만 것을 보더라도 수요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기술개발이든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든 소비자의 잠재적 욕망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심층 검토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야 하며 인문학 도움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창조경제의 본질이다. 스마트화·네트워크화 진전으로 우리는 이미 창조경제 시대에 접어들었으나 현 정부가 들어서서야 겨우 창조경제가 본격적인 국가의제가 됐다. ICT와 기존 산업의 융합, 산업 간 융합, 더 크게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융합의 장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경영진에게 미술관 관람을 권장하기도 한다. 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에서 첫 글자를 딴 TED 콘퍼런스에서는 빌 클린턴·빌 게이츠·제인 구달·제임스 캐머런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와 전문가를 모아서 강연을 듣고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7500달러의 비싼 참가비에도 1년 전에 매진될 정도다. 그만큼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목말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최한 `SW+인문 콘퍼런스`나 `창조경제박람회`도 훌륭한 융합의 장이다. 그런데 융합의 장이 특정 박람회나 콘퍼런스에 한정돼서는 곤란하다. 모든 기술세미나와 워크숍에 인문학 세션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직장·연구소·학교에도 융합의 장이 들어서야 한다. 시각을 달리하면 기존기술과 제품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가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 해결팀이나 혁신팀은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현재 ICT와 과학기술이 웬만한 아이디어는 실현시켜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창조경제 역군이 돼야 한다. 정부는 창조경제 역군의 활동 공간 마련과 사업화 지원에 힘써야 한다.
차양신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 yscha@ra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