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갈등이 잦아들기는커녕 쳇바퀴만 돈다. 이해 당사자를 넘어 사회 갈등까지 번졌다. 수서 발 KTX 법인을 둘러싼 철도 민영화 논란 얘기다.
정부, 국민, 코레일, 노조까지 민영화를 원한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예 수서 KTX법인 면허를 내줄 때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지 못하는 조건을 달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 언급이라면 논란이 쏙 들어가야 마땅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말이다.
노조와 일부 국민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정부 약속까지도 꼼수로 여긴다. 박 대통령의 말마따나 여러 차례 민영화를 안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노조가 반대 파업을 하는 것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그 불신의 단초를 정부가 제공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서유럽 국가 순방 길에서 프랑스 경제인과 만나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되면) 도시철도 분야 진입 장벽도 개선될 수 있다”며 도시철도 시장 개방 가능성을 시사했다. 프랑스 미디어 보도다. 국내 미디어는 이 내용을 보일락 말락 거론만 하고 대통령의 프랑스어 연설만 화제로 삼았다. 더 상세한 외신 내용을 뒤늦게 접한 국민과 노조가 정부를 믿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부가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 순방 발언을 제대로 설명했으면 좋으련만 반대 진영만 불법으로 몰아붙여 불신만 더 키웠다.
자칫 제2의 광우병, 4대강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논란의 씨앗도 결국 이명박정부에 대한 불신이었다. 주무 장관의 약속만으로 충분히 잠재울 논란이 이렇게 커진 것은 정부와 국민 신뢰 관계가 도저히 정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국정원 댓글 논란에서 더 극명히 드러난다. 사실 이 논란의 해법은 간단하다. 어떤 이유라 할지라도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행위는 잘못이며, 이를 바로잡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하면 끝났을 사안이다. 야권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질 수 없다. 대선 불복은 아무리 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일지라도 입에 담기 힘든 구호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탄핵 역풍 학습효과가 아직 또렷하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 간단한 해법을 놔두고 계속 우회하니 대선 불복 목소리만 더 키웠다.
신뢰 위기에 직면한 것은 여의도 정치도 마찬가지다. 특히 민주당이 심각한 지경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에 세배 격차로 뒤진다. 지지율 1위라는 새누리당도 오차범위 안에 있다. 명확한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 없이 소모적 정쟁만 일삼는 정당들이라고 유권자들이 평가한 셈이다. 그런데 민생 법안과 예산안 처리로 유권자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지금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승리만을 위한 정쟁만 골몰한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 심지어 기업까지 누구나 공통적으로 맞부딪힐 적이 하나 있다. 고객 불신이다. 대통령은 국민, 정부는 납세자, 정치인은 유권자, 기업은 소비자, 시민단체는 시민, 언론은 독자를 각각 고객으로 뒀다. 고객 요구는 제각각이며, 일부는 까다롭다. 그래도 이들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물과 물고기 관계다.
세밑이다. 올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때다. 이것 하나만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고객은 누구인가, 그 고객은 정말 우리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고객 믿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잘 짠 새해 계획일지라도 백지부터 다시 쓸 일이다. 어떻게 소통해 고객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물을 담아야 한다. 고객 신뢰가 있다면 최소한 쉽게 망하지 않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