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장 규제의 가장 큰 목적은 다양성 확보다. 과거 대부분 국가에서는 공급원에 따라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정치·사회·문화적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미디어 공급원에 대한 소유규제가 정당화됐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미디어 기업은 그 수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광고주나 대중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유인을 갖고 있다. 소유규제로 다양한 미디어 기업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정책당국이 바라듯 서로 차별화되지 못하는 이유다.
정책당국이 원하는 다양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방법은 소유규제보다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 내용`을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규제가 정당화되려면 정책당국이 추구하는 다양성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선(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미디어 내용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해외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내용규제를 찾아보기 어렵고, 소유규제도 지상파방송에만 적용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신문과 지상파방송국의 교차 소유를 금지한다. 동일한 지역에서는 지상파방송국을 두 개 이하까지만 겸영하도록 하거나 지상파방송 네트워크 간의 교차소유를 제한하고 있다.
과거 신규 케이블 채널의 생존을 보장하고 채널 다양성을 위해 단일 케이블TV사업자가 확보할 수 있는 가입자 수를 전체 유료TV 가입자의 30% 이내로 제한하려던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법안은 법원에서 두 차례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아 무효가 된 바 있다.
유럽은 2002년 수평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하면서 미디어 시장을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편집하는 `콘텐츠 계층`과 콘텐츠를 전송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송플랫폼 계층(케이블TV, 위성방송, IPTV등)`으로 구분했다. 전송플랫폼 계층에는 진입과 소유, 시장점유율 규제를 없애고 경쟁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유럽도 지상파방송은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사하다.
일본은 2010년 복잡한 방송 관련법을 통합해 방송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실시해 미디어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해외사례에서 살펴보았듯 전송플랫폼의 규제 목표는 진입을 자유롭게 하고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전송플랫폼 계층에서의 진입·소유규제나 시장점유율 규제는 규모의 경제를 제한할 수 있고 기술혁신으로 신규서비스 제공을 하는 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규제` 논란은 미디어 다양성 훼손 가능성보다는 거대 가입자 수를 확보한 특정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나 불공정행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일반산업에서는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가 발견되면 사후 규제할 수 있는 문제라 특정 사업자의 영업행위를 제한하는 시장점유율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 않다. 일어나지도 않은 지배력 남용을 우려해 기업 영업을 사전적으로 제한해 발생하는 규제 비효율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미디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규제` 도입의 적절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시장점유율 규제가 없으면 다양성이 얼마나 훼손되는지,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이 어떤 다양성을 의미하는지, 만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장점유율 규제가 정당화된다면 시장점유율 제한의 구체적 수치는 어떻게 계산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보다 실체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와 분석이 필요하다. 과거 정서나 관습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실증적 자료와 과학적 분석에 기반을 둔 미디어 정책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우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 leesw726@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