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안전망 사업이 예산 산정 오류로 예비타당성 조사 자체가 힘겨운 상황에 내몰렸다. 재난망 예비타당성 조사는 KDI와 안전행정부가 자료의 신빙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결과 도출이 늦어져 올해에도 예산 반영이 안 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 예타 자료의 예산 산정 오류까지 제기되면서 장기간 사업이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난망 사업이 표류하면서 주무부처인 안행부의 미약한 사업 의지와 실행력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안행부는 민원이나 감사원 평가를 의식해 그동안 이해관계 집단이 얽힌 재난망 사업의 정책 결정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장기간 표류하고, 사실상 사업이 유야무야되면서 안행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재난망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여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03년 처음 시작된 재난망 사업은 한 차례 무산된 후 2010년 재추진됐다. 2012년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당시 예외조항을 활용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건너뛰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실무진 반대로 무산됐다.
과거 모토로라 독점 논란으로 사업이 무산된 트라우마가 정책 결정자들의 소극적인 자세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행안부는 결국 와이브로와 테트라 두 가지 후보기술을 모두 예타에 올렸다.
안행부는 `뜨거운 감자`를 KDI로 넘긴 것이다. KDI 관계자는 “예타는 특정 국가사업의 경제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두 가지 안을 대상으로 검토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재난망이 특수한 사례라는 것이다.
무리한 절차를 밟은 사업은 이후 제 진로를 찾지 못했다.
KDI와 안행부는 지난해 하반기 당초 타당성 조사에 포함돼 있지 않던 이동통신가입자와 차량, 실내 등의 통화권 확보 비용을 포함시키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와이브로 수치 산정 오류 문제까지 불거지며 현 구조에서 제대로 된 타당성 검사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예타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경제성과 더불어 정책 방향성도 중요한데 재난망 사업에는 그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을 검출할 수치도 충분하지 않은데다 정책 방향성마저 없어 타당성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통상 6개월 정도 걸리는 재난망 예타 결과 도출은 해를 넘기며 2014년부터 추진하려던 원안이 무산됐다.
안행부는 예타 이후 재난망 추진단장을 세 번이나 교체하는 등 관리를 소홀히 했다. 현재 재난망 추진단장은 공석이다.
재난망 사업에 참가했던 정부 관계자는 “2010년 재난망 사업이 재추진된 이후 정부 내에서 재난망 사업을 맡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며 “어떤 기술을 택하더라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재난 관련 기관은 노후장비를 교체하지 못했다. 관련 산업계도 진퇴양난이다.
정부는 재난망 사업이 재추진된 이후 경찰·소방·지자체의 재난 관련 장비 고도화를 사실상 막아왔다. 재난망 사업이 본격화되면 중복투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들 기관은 VHF 등 낡은 솔루션만 보충해 현장 공백을 메우는 실정이다.
관련 산업계도 몇 년째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와이브로 진영은 칩, 무선(RF), 서버, 교환기 등 재난 솔루션을 대부분 국산화했지만 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테트라 업계는 관련 인력을 수년째 놀리는 실정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가 정책 과정에서 제일 나쁜 것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라며 “타당성은 도출하려면 안행부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끌어내든지 아니면 과감히 백지화해 민간과 업계의 누수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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