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방통위는 이통 3사에 불법적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가입자 확보를 위한 이통 3사의 보조금 전쟁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보조금이 월 사용량 6만원 이상 고가요금제와 90만~100만원대의 고가 프리미엄폰에 과도하게 지급돼 극심한 이용자 차별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보조금 전쟁, 고가폰 위주 단말 유통 등 현재 우리나라 단말 유통구조는 정상적이라 할 수 없으며, 비정상적 단말 유통체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방통위와 이통사의 보조금 숨바꼭질은 해결될 수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가트너에 따르면 국내 단말 평균 공급가는 세계 1위다. 우리나라에서는 90만~100만원대의 고가·고기능 스마트폰 보급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길고 다양한 기능을 적절히 활용하는 이용자에게는 이러한 고기능 스마트폰의 보급 및 확대가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 하지만 이용자 중에는 음성통화나 간단한 인터넷 검색 기능만 주로 쓰기 때문에 굳이 고가·고기능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중저가 단말를 선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이는 우리나라의 단말 유통체계가 고가 프리미엄폰 위주로만 형성됐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통신비 지출 비중은 회원사 34개국 중 1위를 차지한다. 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말 출고가격은 2008년 42만원에서 2011년 85만원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두 가지 사실은 단말 가격이 우리나라 가계통신비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중저가 폰이 활성화돼 있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90만~100만원대의 고가 플래그십 모델로 시장이 형성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12년 국내 제조사의 중저가 모델인 L시리즈는 전 세계 동시 출시로 각광을 받아 1500만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해 1초에 한 대꼴로 팔리는 글로벌 히트제품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통신사는 출시조차 못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보조금 착시(illusion)를 일으키는 통신사·제조사의 보조금 정책 때문이다. 과도하고 차별적 보조금을 통해 고가의 요금제·단말을 사용하도록 지속적으로 유도, 이용자의 단말 선택 폭을 제약한 것이다.
2012년 5월부터 단말 자급제도가 시행돼 20만~30만원대 중저가의 다양한 단말이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가 유통하지 않는 외부 단말을 구입해 서비스에 가입하면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없어 소비자가 중저가 단말을 구입할 유인이 매우 적다. 반면에 외국에서는 이통사가 아닌, 일반 유통망에서 별도로 구입해 오거나 본인이 사용하던 폰을 그대로 쓰면 보통 20~30%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한다.
특히 영국은 단말기와 서비스가 분리되는 `심 온리(sim-only) 요금제` 도입 이후 20파운드(약 3만5000원) 미만 저가요금제 가입 비중이 2007년 6%에서 2012년 49%로 증가했다. 즉 소비자가 이통사가 유통하지 않는 외부 단말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단말 유통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춘 것이다.
단통법이 통과되면, 소비자가 기존에 사용하던 폰이나 외부에서 자급제 단말을 구매해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중저가 단말을 선택해 단말 가격뿐 아니라 통신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단말 시장에서는 경쟁체계를 조성할 수 있다.
이제 불필요한 보조금 숨바꼭질을 끝내고 선진국과 같이 단말기 유통구조를 정상화시킬 시점이다. 단통법 제정이 시급하다.
임차식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 csleem@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