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제조업 로드를 가다]에필로그-우리 제조업에 던지는 시사점

세계 제조업 지형도의 변화를 살핀 `아시아 제조업 로드`. 전자신문은 지난 1일부터 총 10회에 걸쳐 신년 대기획을 연재했다. 지난해 특별 취재팀이 중국부터 동남아 미개척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누비며 취재한 결과물이다. 취재팀은 중국 9개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쑤저우·선전·시안·톈진·둥관·후이저우)와 베트남(옌퐁·하노이·닌빈)·필리핀(라구나) 등 동남아 지역, 일본과 대만을 직접 탐방했다.

각 지역 제조업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기자들은 우리 산업에 던지는 시사점을 도출해봤다. 결론은 현지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제조업 로드에 함께 참여한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취재 기자들의 방담 사회를 맡았다. 현장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아시아 제조업 로드의 미래를 그려본다.

◆참석자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사회), 문보경 기자, 이형수 기자, 오은지 기자, 김창욱 기자.

-사회=취재 현장에서 느꼈겠지만 현재 중국의 동부 연안과 서부 내륙은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 같다. 투자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노동집약적 조립 산업이 진출했다면 이제는 자본집약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 국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한국에 위기가 왔다는 인식도 많아졌다. 이대로의 해외 진출, 과연 좋은 것일까.

△문보경=삼성과 LG 모두 첨단 디스플레이 공장을 중국에 세웠다.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춰 거대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관세까지 높였다.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LCD 투자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앞으로 국내 설비 투자는 차세대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정도일텐데 시장이 열리기까지 당분간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한동안은 제조업 공동화 현상으로 산업 생태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해법은 미래를 서둘러 준비하는 연구개발 외에는 없다.

△오은지=중국 주장삼각주 지역에서 겪는 문제는 한국이 안고 있는 고민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저렴한 인건비가 매력적이어서 세계 공장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외국 기업들은 서부로 옮겨가고 있다. 남은 것은 첨단 디스플레이 정도다. 중국 정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후이저우시 고위 관계자를 만나보니 노동집약적 사업이 아니라 첨단산업 R&D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들은 일본 제조업의 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여전히 소재 산업에서 글로벌 강소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장기 투자와 오랜 기술 축적이 필요한 기술 집약 산업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도 원천기술 투자를 늘려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사회=그렇다면 동남아 제조업 환경은 어떤가?

△이형수=필리핀과 베트남 등을 다녀오며 아세안 전반의 현황을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세안은 이미 경제 블록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각 국가마다 혜택이 다 다르고 정책 당국자의 생각도 상이했다. 기업마다 최적화된 진출 전략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주의할 것은 임가공비만 좇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인건비가 매년 15-20%씩 오른다. 인도네시아도 임금 인상이 정부의 기조다. 아세안이 거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했을 때 제조업 거점 전략에서 시장 전략으로 넘어가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우린 중국에서 한번 예방 접종을 맞지 않았나. 임금이 너무 높아져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기업들이 허다하다. 곱씹어 볼 대목이다.

-사회=베트남은 입주 기업들에게 계속 혜택을 주는 듯 하더니 지난해부터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완제품 기업을 선호했던 베트남도 지난해부터 부품소재 이야기를 한다. 결국 자국 산업을 키우겠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베트남도 중국처럼 가지 않을까.

△이형수=베트남은 국내 투자총액 4위, 건수는 3위다. 그에 못지않게 베트남 정부도 한국 기업에 상당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한다고 한다. 게다가 삼성은 낙후된 북부 지역인 하노이에 들어가면서 지역 균형 발전까지 이뤘다. 수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2·3차 협력사까지 계산하면 상당한 숫자다. 원래 농업 위주인 지역에서 인력 부족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제2공장이 올 3월 가동하면 베트남의 삼성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베트남도 삼성 리스크를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리스크 분산을 위해서 소재부품을 직접 하려는 듯하다. 이제는 베트남도 투자의 질을 생각한다. 우리도 다시 생각해볼 때다.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다. 중국에서 얻은 교훈처럼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미얀마나 캄보디아 등 대체 생산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회=아세안의 낙후된 산업 인프라도 고려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베트남 북부는 중국에서 전력을 끌어오고 필리핀은 단전 될 때도 많다. 또 현지에서 숙련된 중간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큰 숙제다. 방법이 없을까.

△문보경=오래전부터 해외로 나간 삼성은 이미 시행착오를 겪어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삼성전기 톈진법인은 중간 관리자를 100% 현지인으로 쓴다. 중간 관리자로 키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다. 중소기업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형수=아세안 지역은 대학 교육이 미진해 중간 관리자층이 부족한 것도 당연하다. 결국 기업이 키우는 수밖에 없다. 사회 공헌과도 연계할 수 있다. 크루셜텍 베트남법인을 보고 인상 깊었던 제도가 있다. 한국에 온 지 5~7년 된 산업 연수생들을 선발해 현지 중간 관리자로 교육한다. 한국 상황과 문화를 잘 이해하니 현지인과 부딪힐 수 있는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보인다.

-사회=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소득이 올라 `세계의 지갑`이 될 정도로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 첨단 제품의 시장 경쟁도 치열해질 것 같다.

△오은지=일본 기업들은 자국 내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한국에 제조 시설을 투자했다. 한국 고객사들이 실시간 대응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똑같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한국은 2~3시간 정도는 기다려 주지만, 중국은 그 만큼 기다리라면 협력업체를 바로 교체한다고 한다. 고부가가치 시장이 있다면 대응력을 높이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본다. 시장이 있으면 더 투자해보자.

△김창욱=대만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등 부품을 중심으로 첨단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운 나라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추격해 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의존도는 커졌는데 중국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사회=이제 섬유 산업에서는 본사가 한국에 없는 곳도 많다. 첨단 전자 산업도 해외로 나가면 국내에는 사무소만 남게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겠는가. 제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 격차를 벌이기 위해 R&D도 해야 하지만 신성장동력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형수=산업단지관리공단에서 10년 전 했던 조사를 지난해 다시 했다. 해외에 투자하면서 한국 공장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과거에는 해외에 투자하면 국내 설비 투자는 축소한다는 답이 많았는데 지난해 조사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해외 투자와 별개로 국내 공장을 유지하겠다 또는 확대하겠다는 답이 많았다. 대기업들이 더 비중이 높게 나왔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소재와 생산·공정 기술 관련 투자는 아직도 할 게 많다는 뜻이다.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이미 다 나갔다. 더 이상 슬림화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힌트를 볼 수 있는데 첨단산업 붐을 일으켜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또 넥스트 스마트폰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첨단 제조업 유턴은 자동화·고부가로 귀결된다. 헬스케어 같은 IT융합 시장도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집약적 산업도 유턴할 수 있는 개성공단을 빼놓을 수 없다. 개성공단 정도가 4-5개 더 생긴다면 노동집약적 산업도 멀리 갈 필요가 있을까? 한국은 대북관계 개선해 그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

△문보경=섬유 기업들도 한국에서 탄소섬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돌아섰다. 나가는 기업만 있나. 들어오는 외국 기업도 있다. 소재기업들은 한국 전자·자동차 기업들을 잡기 위해 제조업을 이끌고 들어온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R&D는 제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생명줄이다.

△오은지=과도기적 상황에서는 일반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내실을 다지는 일이다. 기술력을 축적하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여력이 안되는 곳이 상당수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적극 고려해야 한다.

-사회=뾰족한 해답이 나오기는 어렵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독일을 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와는 산업 구조가 다르다. 기계와 정밀화학, 두 산업 축을 중심으로 소재에서 설비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정밀화학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 산업도 발전시키고 있다. 전자산업도 융합을 통해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 전통 주력산업에도, 빌딩에도 IT를 접목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큰 그림에서 제조업 전략도 나와야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기업의 제조업 지형 변화에 대한 꾸준한 취재와 조언을 부탁한다.

정리=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 김창욱 기자 monocl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