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를 개최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아침 일찍 간담회를 마친 후 국무회의에 참석한데 이어 곧바로 대통령 해외 순방 지원을 위해 출국했다. 윤 장관이 숨 가쁘게 바쁜 일정 속에서 굳이 이날 30대 그룹 간담회를 개최한 것은 그만큼 전체적인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판단에서다. 하루라도 빨리 주요 그룹 인사들과 만나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역시나 기업 투자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제시한 올해 투자계획은 100조원에 못 미친다. 지난해 98조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4월 같은 형식으로 열린 간담회에서 30대 그룹이 전년 대비 10조원가량(7.7%) 늘어난 149조원 투자계획으로 화답한 것과 비교하면 이날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당초 산업부는 30대 그룹 투자 계획도 함께 발표하려 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상당수 그룹사가 국내외 경영 환경 변수와 내부 이유 등을 들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30대 그룹이 정부에 제출한 투자 계획이 실제로 어느 정도 집행됐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투자 확대를 위한 가속 페달을 밟으려는 정부와 달리 주요 기업은 좀처럼 힘을 싣지 않는 형국이다.
실제로 이날 삼성, LG 등 주요 그룹 사장들은 시종일관 조심스러운 모습을 견지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은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말했다.
정도현 LG전자 사장은 지난해 투자실적이 계획에 못 미쳤다며 역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 사장은 “지난해 디스플레이 분야 기술·수율 등의 문제로 일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른 그룹 참석자들도 대동소이한 모습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는 “각 사별로 상이한 측면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보수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올해 대내외 변수가 여전하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엔저와 원고 등 환율 요인에 더해 통상임금·춘투 문제까지 겹쳐 기업 경영 환경에 부침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분야 인력난은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연일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아직 각 그룹의 투자계획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만큼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기업 환경 안정화 노력으로 투자·고용 확대를 독려할 방침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전체적으로 투자심리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며 “올해를 규제개혁 원년으로 삼아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엔저·통상임금 등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 환경 안정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업별 프로젝트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 노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고질적인 산업 현장 인력난 해소를 위해 현장 전문인력, 고급융합인력, 여성인력 활성화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신성장동력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 사업인 산업엔진 15대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주요 그룹에 대한 정부의 구애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투자를 늘리기엔 불확실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날 현장에서도 일부 관계자들은 새해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 수준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A그룹을 대표해 참석한 사장은 “잘 되겠죠”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