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선망의 대상이나 우리나라에선 기피하는 직업이 있다. 소프트웨어(SW) 개발이다. 밤샘 야근을 밥 먹듯, 휴일 근무를 야참 먹듯 한다. 연인과의 결혼은커녕 데이트조차 어렵다. 30대 중반을 넘으면 다른 일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3D 직업이 됐다. 겉으로 멋지나 속으론 동남아 사람들이 차지한 생산직과 다를 바 없다.
우리 개발자들이 외국 개발자처럼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지금으로선 사치다. 다만 일 한만큼 대접받기를 원한다. 이 요구에 정부가 화답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공공 SW 적정 사업기간 산정 기준을 새로 마련, 다음 달 시행한다. 공공기관이 주문한 SW사업에 필요한 적정 기간을 부여해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기는 그릇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조치다. 개발자로선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 첫발을 뗐다. 개발자 처우 개선까지 갈 길은 멀다. 적정 기간 부여만 해도 이를 어기는 발주기관이 없도록 잘 감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제도를 악용하려는 SW개발용역업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업체로선 직원을 많이 돌리는 게 이익이다. 발주기관 요구가 없어도 일정을 앞당겨 남은 시간에 직원을 다른 프로젝트로 돌리려는 유혹이 생긴다. 이를 막을 근본 대책은 결국 SW 개발에 제값을 주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왜 인명사고가 많이 나는가. 마진은 얼마 없는데 일정을 단축한 만큼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 건설용역업체가 작업자에게 무리한 초과근무를 시키고 안전수칙도 무시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일정을 당기는 것보다 정한 기간에 맞춰 빈틈없이 작업할 때 발주자로부터 좋은 평가와 대가를 받는다면 용역업체도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용역서비스에서 적정 대가 산정이 중요한 이유다.
SW개발업체들도 적정한 서비스 대가를 받아야 직원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면 저절로 좋은 인재가 모인다. SW를 창조경제 서비스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정부다. 이런 저런 정책을 고민한다. 하나만 잊지 않으면 된다. 개발자 처우 개선은 SW산업 육성 출발점인 동시에 도착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