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다. 기타와 우쿨렐레 등 현악기를 파는데 비교적 일찍 유통을 시작해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3D프린터 탓이다. 필요한 물건을 뚝딱 찍어내는 세상이 되면 유통업자는 팔 게 없다는 우려다. 괜한 걱정일까. 도쿄에서 열린 전자부품 전시회 `네프콘 재팬 2014`에서 그 실체를 목격했다.
세계 최대 3D프린터 업체 `3D시스템스`의 수석부사장 케빈 맥엘리어는 `제조업의 미래`란 제목으로 강연에 나섰다. 최근 가장 `핫`한 기술과 가장 앞선 기업의 주요 인사가 등장하는 만큼 강연장은 인산인해였다.
그는 회사가 개발한 주요 제품과 그 의미를 소개했다. 권총은 이미 옛날 얘기다. 새로운 소재를 쓰는 3D프린터가 속속 개발됐다. 고무와 합금을 넘어 초콜릿과 설탕도 재료다. 설탕을 넣고 과자를 프린팅한다. 현재 100개 이상의 소재가 쓰인다. 하얗고 검은 색만 프린팅 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색깔이 표현된다. 그는 오색찬란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예로 보였다.
소프트웨어 지원 움직임도 빠르다. CAD(Computer Aided Design) 기술이 있는 사람만 설계도를 만들어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용 스캐너가 등장했다. 원하는 물체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설계도가 만들어진다. 3D시스템스가 선보인 `센스 스캐너`는 크기가 작아 휴대가 편하고 물건은 물론이고 사람, 풍경도 스캔한다.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설계도도 인터넷에 공개했다. 어린이 대상 설계도 제작 교육도 한창이다.
맥엘리어 부사장은 “10년 전 일부 산업에서만 쓰이던 3D프린터가 대중화 준비를 마쳤다”며 “3D프린터가 곧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인의 걱정은 현명한 불안이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3D프린터가 대중화되면 악기가 아닌 3D프린터를 팔면 된다. 다양한 프린팅 재료와 독특한 설계도도 사고파는 세상이 된다. 미래를 먼저 본 그가 유리하다. 3D프린터가 만든 새로운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한 유통업자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일본)=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