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영화 산업에서 35㎜ 필름 시대 저문다

카메라에서 필름이 사라진 데 이어 영화에서도 35㎜ 필름이 퇴출될 조짐이다. 120년 동안 영화는 35㎜ 필름으로 찍어서 스크린에 비추는 방식이었지만 디지털 상영기에 자리를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다.

20일 LA타임스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사 파라마운트는 올해부터 35㎜ 필름 배급을 중단한다. 이 회사는 아카데미상 여러 부문에 수상 후보로 오른 `월스트리트의 늑대`를 전량 디지털로만 배급한다고 극장 관계자가 밝혔다.

파라마운트는 이에 앞서 극장주들에게 지난달 배급한 `앵커맨2`가 마지막 35㎜ 필름 배급 영화가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미국에서 영화를 디지털로만 배급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소품 다큐멘터리 등에 국한됐다. 존-크리스토퍼 호락 LA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영화·TV 자료센터장은 “영화 산업에서 일대 전기가 될 굉장히 중요한 변화”라며 “곧 닥칠 일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파라마운트의 35㎜ 필름 배급 중단은 다른 대형 제작·배급사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올해 안에 35㎜ 필름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20세기 폭스와 디즈니도 2011년 “2∼3년 이내에 35㎜ 필름 배급을 중단할 것”이라는 편지를 영화관 업주에게 보냈다.

배급사 입장에서 35㎜ 필름 퇴출은 숙원 사업이다. 디지털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을 담은 35㎜ 필름 1본을 만드는 데는 2000달러(약 210만원)이 들지만 디지털 방식이면 100달러(약 11만원)짜리 하드디스크 하나면 끝이다. 배송비도 비교할 수 없이 싸다. 위성이나 인터넷을 통해 전송하면 아예 배달 과정도 생략할 수 있다. 35㎜ 필름이 퇴출되면 관련 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달 유명 필름 작업 업체 테크니컬러는 미국 할리우드 인근 작업장을 폐쇄했다. 직원 360명이 일터를 잃었다.

미국 내 4만여 영화 스크린 가운데 8%는 아직 디지털 상영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7만달러(약 7400만원)나 드는 디지털 상영 시설을 갖출 여력이 없는 주로 시골 지역 영화관이다. 이들은 끝내 영화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파라마운트는 35㎜ 필름 배급 중단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분명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 전통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35㎜ 필름 퇴출에 앞장섰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웠다는 분석이다. 파라마운트는 해외 시장, 특히 아직 디지털 시설이 부족한 중남미 지역에는 35㎜ 필름 배급을 계속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