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미국 망 중립성 무효 판결의 진정한 의미

[ET단상]미국 망 중립성 무효 판결의 진정한 의미

미국이 인터넷 혁신의 방향을 선회했다. 망 중립성 논쟁 근원지 미국에서 지난 14일 망 중립성 원칙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와 파장이 크다.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은 유무선 브로드밴드 사업자가 인터넷 망을 통해 전송되는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불합리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번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이 규제 원칙을 무효화한 것이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결 직후 온라인 비디오서비스 업체 넷플릭스 주가가 하락하고, 통신사는 망대가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두고 승자와 패자를 가리거나, 망 중립성이라는 원칙이 폐기됐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지엽적이고 편협한 시각이다. 이번 판결의 진정한 의미는 브로드밴드 네트워크가 혁신의 장임을 재확인하고, 규제보다는 시장 기능을 통해 혁신의 꽃을 피우자는 방향 전환에 있다.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은 1996년 미국 통신법에 명문화되어 있듯이 브로드밴드 확산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자 하는 정책 의도에서 출발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제정한 망 중립성 규정(Open Internet Order)에서도 브로드밴드가 경제성장의 엔진이고, 혁신적 서비스 토양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번 소송 당사자인 버라이존과 FCC 모두 인터넷이 혁신의 장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고, 지금까지의 인터넷 이용과 접근에 변화가 없을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번 판결 의의는 브로드밴드 확산과 인터넷 혁신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망 중립성 규제보다 시장 기능을 통한 접근을 선택했다는 데 있다. 법원은 연방통신위원회가 제정한 망 중립성 원칙은 인터넷을 마치 전화처럼 취급해 정책 목적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라는 판단이다.

망 중립성 규정 제정 당시 연방통신위원회 내에서도 망 중립성 규정이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번 판결은 규제로 뒤엉켜있는 인터넷을 다시 자율화해 시장 중심으로 돌려놓은 데 의의가 있다. 또 다른 의미는 네트워크 가치를 인정하고 중요성을 재확인한 데 있다. 브로드밴드 투자 촉진을 위해 과도한 망 중립성 규제를 무효화한 것이다. 스마트 혁명은 이제 모바일을 넘어 사물간 통신, 3D 프린팅으로 확장되고 있다. 융합 서비스 뿐만 아니라 기존 제조업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강한 유무선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의 가치를 인정한 이번 판결로 통신사업자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혁신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있어 유연성을 확보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기도 전에 망 중립성을 근거로 한 비판 때문에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통신사업자의 혁신 기회 확대로 소비자는 더욱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건전한 인터넷 거래질서를 바탕으로 인터넷 생태계의 참여자가 서로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촉발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오랜 진통과 토론 끝에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총론은 마련됐다. 이제 각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각론은 제도의 운용과 생태계 참여자의 인식이다.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기고 예외적으로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시장 참여자 역시 상호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협력을 통해 혁신을 추구하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혁신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망 중립성 판결이 주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 소장 yooty@k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