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면 뭣합니까. 속도 조절해야죠.”
최근 수년간 중소기업청과 특허청 고위 공직자들에게서 흔히 들었던 말이다. 승진에 대한 욕심이 없지는 않을 이들에게 승진 얘기를 꺼내면 손사래부터 친다.
왜일까. 왜 남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승진 명단에서 이들은 좀 빠졌으면 하는 걸까.
두 부처의 최근 인사 흐름을 보면 답은 확연해진다.
사실 외청급 부처에서 기관 내부인이 올라갈 수 있는 승진의 마지막 종착역은 청·차장이다. 청와대 입심으로 표현되는 기관장 인사를 감안하면 내부에서 최종 직위는 차장까지라고 봐야 한다. 고위공직자에게는 `로망`으로 불리는 직위다.
그럼에도 두 부처에서는 요즘 승진 기피 바람이 분다. 될 수만 있다면 승진 속도를 늦춰보겠다는 이들의 눈치 보기가 극심하다. 두 기관은 어느 순간 고위 공직자의 승진 속도가 거의 `롱텀에벌루션(LTE)급`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승진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상 직위에 빨리 오를수록 은퇴 시점도 똑같이 빨라져서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50대 초·중반에 공직자 옷을 벗어야 한다. 공무원 하면 정년보장이 연상되나 이들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중기청보다는 특허청 속도가 더 빠르다. 특허청은 지난해 행시 31회에서 차장을 배출했다. 외청급 부처에서만 놓고 보면 가장 빠른 속도다.
중기청은 행시 37회 출신 두 명이 국장을 달았다. 다른 부처 행시 기수와 비교하면 2~3회 정도 앞선다. 이쯤 되니 곧 국장 승진을 앞둔 일부 과장들조차 속도 조절하겠다는 이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어느 조직에 몸을 담고 있든지 직장인이라면 은퇴에 대한 고민은 똑같다. 좀 더 직장에 오래 남아있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일할 능력이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체력과 능력이 뒷받침되는 고급 인재들의 조기 은퇴가 과연 어떤 바람을 몰고 올까.
대전=신선미 전국취재팀 부장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