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살면서 착하고 훌륭한 일을 하면 이름이 후세까지 빛난다는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를 제시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비단 삶의 자세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고 성장해가는 원리도 이 속담에 녹여놓은 것은 아닐까. 호랑이 가죽과 이름은 바로 시장에서 갖춰야 하는 경쟁력을 대표하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은 상품의 뛰어난 품질을 상징하는 것이다. 품질이 뛰어나니 호랑이가 멸종 위기에 처하도록 밀렵되면서까지 핸드백과 지갑, 액세서리 원재료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 많은 일본 포수가 한국으로 건너와 결국 우리나라 호랑이가 전부 사라지게 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씁쓸한 기억이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사람이 호랑이 가죽을 향유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기술 개발을 통해서 가능하다. 호랑이 가죽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뛰어나게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견고하고 가벼운 인조 가죽을 만들어낸다면 그 기업은 분명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를 살리자는 동물보호 슬로건까지 곁들인다면 수요자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커갈 수도 있다. 여기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품 출시 전에 먼저 특허를 출원해 땀 흘려 개발한 기술에 대한 법적 권리인 특허권을 확보해놓는 것이다. 호랑이 인조가죽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면 시장이 될 만한 국가를 지정해 국제출원도 해놓아야 한다. 그럼 특허출원을 했다면, 이제 세계시장에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호랑이 인조가죽에 기업 브랜드를 표시하지 않는다면 수요자는 어느 기업이 뛰어난 품질을 보장해주는 곳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사람이 명품 브랜드에 매혹되는 것은 뛰어난 품질과 멋진 디자인이 지속된 역사가 바로 브랜드에 축적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시장에서 브랜드를 보호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시장에 나가는 기업은 상품을 판매하려는 나라마다 상표권을 미리 확보해둬야 한다. 상표출원 심사에 대체로 1년 내외의 시간이 걸리므로 세계에 나가기 1년 전에 상표출원을 할 필요가 있다. 혹시, 나라마다 상표출원을 하지 않고 세계상표와 같이 브랜드를 한 번에 보호받는 방법은 없을까. 아직 세계 상표라는 제도는 없다. 그러나 브랜드 소유자 편의와 요구사를 반영해 만들어진 유럽공동체 상표제도와 마드리드 국제상표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럽공동체 상표제도는 하나의 상표등록으로 유럽 28개국 5억 명 인구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된 유럽연합 전역에 권리가 미치는 제도이다. 1995년에 도입돼 연간 10만 건 이상 출원되는 성공적인 제도로 정착됐다. 유럽연합에 뒤질세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는 불어만 사용하는 마드리드협정에서 나아가 영어도 사용하는 마드리드의정서를 1996년에 시행해 가입국이 91개국에 이른다. 마드리드국제상표제도는 지정한 나라마다 각각 심사돼 권리가 부여되지만 한 번의 절차로 해당 국가 전부에 출원할 수 있다는 간편함이 있다.
브랜드 소유자 이익을 도모한 국제적인 상표제도를 우리 기업은 얼마나 이용하고 있을까. WIPO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마드리드 국제상표출원은 490건으로 일본의 1941건과 중국의 1846건에 비해 대단히 적다. 6702건 1위 독일과 5125건 2위 미국, 4026건 3위 프랑스에 비할 바가 아닌 수치다. 이 통계는 우리 기업이 세계에 상표출원을 많이 하지 않거나, 아니면 나라마다 각각 상표출원을 하는 방법을 선호한다고 설명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도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 진출과 함께 국제적인 상표제도 이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기업이여, 뛰어난 품질과 훌륭한 기술의 호랑이 인조가죽을 가지고 세계시장으로 나가십시오. 다만, 기업의 브랜드를 남길 수 있도록 먼저 세계시장에서 상표등록을 받아 놓은 뒤에 말입니다.
이승룡 리앤목특허법인 변리사 leesy@leem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