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번호이동 가입자를 유치할 때 알뜰폰(MVNO) 사용자에 불리하게 차별 대우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MVNO 가입자가 번호이동 가입을 할 때 다른 경쟁 이통사에서 옮겨오는 가입자보다 유통 보조금(리베이트)를 덜 주는 식이다. 이 때문에 “MVNO는 한 번 가입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이통사에서 MVNO 가입자가 번호이동 가입 시 유통 보조금을 차감하는 정책을 지난해 4분기부터 시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동통신업체 A사 대리점의 지난해 12월 단가표에는 `번호이동 신규 가입 건에 리베이트 20만원 축소 지급`이라고 명시됐다. 가령 9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번호이동 가입자를 유치할 때 판매점에 30만원을 지급하기로 돼 있다면, 경쟁 이통사가 아닌 MVNO로부터 옮겨오는 가입자를 유치할 경우 10만원밖에 지급이 안 되는 것이다. 1월 단가표에는 아예 `마진 없음`이라고 적혔다. 한 마디로 `MVNO 가입자는 받지 마라`는 것이다.
유통 보조금에서 일부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마진을 남기는 판매점 입장에서는 MVNO 가입자를 상대로 한 번호이동 판매를 꺼릴 수밖에 없다. 판매점이 확보할 수 있는 단말기는 한정돼 있어, 마진을 남길 수 없는 MVNO 가입자보다 다른 가입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한 판매점 관계자는 “확보한 단말기로 최대한 마진을 남겨야 하는 상황에서 MVNO 가입자의 번호이동 구매 문의에 적극 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매점이 MVNO 가입자 번호이동을 꺼리게 되면서 번호이동이 힘들다는 의미의 `MVNO 감옥`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MVNO 업계 관계자는 “한 번 MVNO에 가입하면 추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분위기를 확산시켜 MVNO 업계에 적잖은 타격을 준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MVNO 활성화 정책에도 찬물을 끼얹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 A사 관계자는 “본사가 해당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고, 일부 대리점이 자체적으로 만든 정책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런 정책의 근거가 될 법한 이유를 제시했다.
이 통신사에 따르면 △MVNO 가입자의 평균매출(ARPU)이 낮아 대리점이 꺼릴 수 있고 △번호이동으로 구매한 단말기를 되팔아 차익을 내는 `폰테크`를 위해 싼 MVNO 회선을 미리 확보하거나 `폰파라치` 활동을 위한 허수 가입자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MVNO 업계에서는 “본사가 제시하지 않은 정책을 대리점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경우는 없다”고 반박했다. 대리점에 대해선 관리·감독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통사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A사는 대리점 단가표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