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 도입 논의 10년동안 `진전 없어`…추진협의회도 `유명무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참여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전자투표가 정쟁에 밀려 10년째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가 법적 근거를 마련해 지난 200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전자선거추진협회의회를 설립했지만, 2009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2006년 도입한 40억원 규모의 터치스크린 전자투표기는 제대로 활용도 못한 채 노후화되고 있다.

3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2005년 처음으로 도입 논의가 시작된 전자투표 제도는 여야 간 정치 이슈에서 밀려 본격적인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전자투표 제도 도입 로드맵`까지 수립했지만 정치권 반발로 이행은 무산됐다.

`전자선거추진협의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라 2005년 여야 정치인들로 구성된 전자선거추진협의회도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단 6차례 회의가 진행됐을 뿐,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한 적은 없다. 회의도 설립 초기에 대부분 개최됐다. 전자선거실무추진단과 전자선거자문위원회도 함께 구성했지만 실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협의회는 2009년부터 운영이 중단돼 현재 홈페이지도 폐쇄된 상태다.

전자투표 도입을 위해 도입했던 40억원 규모의 터치스크린 방식 전자투표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006년 한 대당 190만원 하는 터치스크린 전자투표기 1900대와 관련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현재는 농협 조합장 선거나 대학 선거 등 위탁선거에 활용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전자투표기 1900대는 공직선거에 단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한 채 오는 2016년이면 도입 10년을 맞아 노후화로 사용이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전자투표 도입이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여야 정치권이 전자투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층이지지 세력인 여권은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전자투표 제도 도입을 꺼린다. 야권도 옛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제외하고는 전자투표 도입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터치스크린 투표기기 등 전자기기의 보안성 우려도 전자투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해킹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자투표가 투표율을 높여 줄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도 반대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안으로 6·4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사전선거가 전자투표의 한 형태라고 제시한다. 사전선거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을 활용, 투표일 이전에 주민등록 지역과 상관없이 전국 읍·면·동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선관위 관계자는 “토요일이 포함된 이번 사전선거 기간으로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유비쿼터스 투표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터치스크린 등 ICT 기반 투표기기를 활용한 전자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이상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표 당일에도 어디서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자투표 도입이 필요하다”며 “정치권과 정부도 이제는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투표 제도도 결국 종이와 우편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수작업과 개표를 위해 전자투표보다 더 많은 전자기기를 이용해야 한다”며 “전자투표보다 개표 결과 조작 위험도는 더 높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전자투표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전자투표=투·개표 과정을 모두 전산화해 종이가 아닌 컴퓨터 기반으로 투표를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도입을 추진했던 전자투표는 터치스크린 방식이다. 유권자는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으로 본인 확인을 하면 터치스크린에 해당 지역 후보 기호·성명·정당명·기표란이 나온다. 터치 방식으로 해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자동으로 데이터가 저장돼 개표 및 검표 시스템으로 전송된다. 별도 저장장치를 둬 데이터 저장 이중화 체계도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