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토막 났습니다.”
중견 소프트웨어(SW) 업체 A사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새해 덕담 대신 들은 첫 마디다. 솔루션을 설치한 모 공공기관과 최근 올해 SW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했는데 신청한 요율을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더라는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함을 토로하는데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모멸감과 배신감까지 느꼈다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A사장이 털어놓은 사정은 이랬다. 지난달 초에 공공기관 IT 담당자로부터 SW 유지보수 요율을 최대한 높게 신청하라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웬일인가 싶었다. 20년 넘게 공공사업을 해왔지만 처음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내내 요율 인상을 약속하더니 진짜 변화가 온다고 생각했다. 욕심 같아서는 외국 솔루션 수준에 맞추고 싶었지만 그간 상황을 감안해서 12%를 신청했다. 보름쯤 지나서 계약 체결하자는 연락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공공기관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한 공공기관 담당자는 불편한 기색부터 보였다. 기재부에서 신청했더니 4%로 깎더라며 그나마 사정을 봐줘서 5%로 올려 줄 테니 계약하자고 했다.
결국 A사장은 공공기관이 제시한 요율로 계약을 체결했다. 속된 표현으로 `찍힐까봐` 한마디도 못했단다. 신청한 요율과 비교하면 수천만원이 날아간 셈이다. 직원들에게 약속했던 개발자 충원도 물 건너갔다. 애초부터 올려주겠다는 소리나 안했으면 기대도 안했을 것이라며 수화기 너머로 긴 한숨을 내뱉었다.
최근에 전해들은 SW 유지보수 요율이 삭감된 공공사업만 대여섯 건이 넘는다.
지난해 정부가 SW 유지보수 요율을 올해 10%, 내년 12%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을 때 본지는 각 공기관별 전체 정보화 예산을 증액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요율 인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수차례에 걸쳐 지적했다. 실제 예산이 집행될 수 없는 여러 정황을 다각도로 취재해 알렸다. 공공기관 스스로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SW 업체와 직접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해 요율을 보존하는 방안 등 대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올해 계약이 체결된 몇몇 사례만 봐도 인상은커녕 현상 유지도 못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한 SW 업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는 계속 인상을 약속하고 있다.
얼마전 열린 SW인 신년회에 참석한 주무 부처 장관은 기존 유지보수 요율 인상 계획을 그대로 발표했다. 생태계 활성화도 다짐했다. 하지만 이미 올해 요율이 깍인 이들의 귀에는 곱게 들릴 리가 없다. 박수는 치지만 믿음은 깨진 상태다.
정책은 신뢰를 토대로 출발해야한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 추진 동력은 사라진다. 지킬 수 없는 달콤한 약속보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실망을 다시 희망으로 바꾸는 지름길은 역시 실행력이다. 요율 인상은 미래부 단독으로 이뤄낼 수 없다. 타 부처와의 협력과 시너지가 관건이다. 미래부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기재부를 설득하는 일도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실마리가 풀린다.
조만간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SW 기업인들과의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실망이 가득한 이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서동규 비즈니스IT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