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핵심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의 제도적 기반으로 국민의 문화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명문화한 `문화기본법` 제정안이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29일엔 첫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전국의 국·공립 문화시설과 공연장, 민간 기업 문화공간까지 국민에게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으로 개방됐다. 실로 `문화를 앞세우는 정부`의 약속이 하나하나 지켜지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느낀다. 문화 융성 및 발전을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도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경제·산업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문화 선진국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한 감을 많이 느껴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반 국민이 문화예술인을 우대하지 못하는 시각과 태도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조선시대 600여년간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문화가 형성돼온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보면 문화에 대한 국민의식은 이제 바뀌어야 마땅하다. 해외 조사기업 Pw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세계 엔터테인먼트산업 시장규모는 1조6000억달러로 추정되고 우리나라는 2011년 세계 8위에서 2012년 한 계단 오른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이는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에 뒤이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분명 어엿한 문화선진국이 된 셈이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문화콘텐츠산업 백서에 의하면 5대 콘텐츠산업은 출판(연 매출액 약 21조원), 방송(약 12조원), 광고(약 12조원), 지식정보산업(약 9조원), 게임(연 매출액 약 8조원)이고, 그 외에 캐릭터, 음악, 영화, 콘텐츠솔루션, 만화산업 순으로 시장이 구성돼 있다. 연간 국내 총매출액은 약 82조원이다. 2년이 지난 올해 콘텐츠산업 국내 총매출은 10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적으로 문화산업 수출액은 제조업 수출액의 네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한다. 지난해 문화콘텐츠 수출액이 50억달러를 넘어섰으니 200억달러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냈다는 이야기다.
이런 `수출 효자` 문화콘텐츠 수출액 중에 약 70%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게임산업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임과 동시에 글로벌시장 영향력이 가장 큰 수출 품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일찍이 게임을 5대 문화콘텐츠 산업의 하나로 지정했고, 게임산업진흥법까지 만들어 업계 수출과 시장 발전을 독려해왔다. 게임업계는 부가가치 높은 콘텐츠산업의 창작자로서, 수출역군으로서 톡톡히 역할을 해 왔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게임중독법 제정 시도, 웹게임 규제안 시행 등으로 게임업계가 전 방위 압박을 받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이 문화산업 종사자라는 자부심을 잃어가고 있다.
게임이 중독물이라고 하면 그 산업에 일하는 종사자는 하루아침에 중독물 제작자, 중독물 유통업자가 돼버리는데, 어떻게 문화선진국의 수준 높은 문화산업 종사자로서 자긍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게임산업은 문화콘텐츠산업이고, 문화는 규제로 문제를 해결할 분야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이해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후유증과 폐단이 안 생긴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있다. 각종 규제를 피해 외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현상도 일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현 정부가 시행하는 문화융성 정책에서 게임업계가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원형 한국컴퓨터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 whlee@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