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진공증착

이희신 한일진공기계 대표
이희신 한일진공기계 대표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끈 모 방송의 드라마를 보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이 등장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 중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인의 시화작품과 만화가의 순정만화 일러스트다.

당시 많은 여학생들이 이들 시화작품과 일러스트를 오려 코팅 비닐 사이에 끼운 뒤 정성껏 다림질해 책받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뒤질세라 남학생들도 여자 연예인의 사진을 책받침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입는 옷을 다림질하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그림, 사진, 글을 영원히 간직하거나 곁에 두고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염원을 `코팅`이란 과정을 통해 밖으로 표출한 셈이다.

이제 더 이상 비닐 사이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끼워 다림질까지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기본적인 바람과 이를 실현시켜주던 코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스마트폰을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이 같은 사람들의 바람을 이뤄주는 코팅이 `진공증착`이라는 진화된 이름의 기술로 곳곳에 스며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디지털 카메라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휴대폰 카메라의 렌즈에는 코팅공정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렌즈를 통해 들어온 광선 중 특정 대역의 광선을 걸러 가시광선만을 통과시키는 필터(IR, Blue 필터)에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십개의 코팅 층이 형성돼 있다. 그뿐만 아니다. 가장 자주 접하는 스마트폰의 터치 화면에도 기본적으로 AF(Anti Fingerprint:지문 방지), AR(Anti Reflection:반사 방지)라는 두 가지의 코팅 기술이 적용된다.

배터리와 유심칩 등을 보호하는 스마트폰의 케이스에도 어김없이 진공증착 기법을 통한 코팅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80~90년대에 소중한 것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코팅이 다리미를 통해 구현됐다면 지금은 휴대폰을 통해 구현되는 셈이다.

진화된 코팅 기술은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뿐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을 보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을 대신하는 안경의 렌즈에도 첨단 코팅 기술이 겹겹이 쌓여 있어 편하고 또렷하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천체망원경의 렌즈에도 코팅 기술은 어김없이 적용돼 우주의 신비를 푸는 과학의 발전에도 일조하고 있다. 자동차에도 헤드라이트 불빛을 많이 반사시켜 반대편 차에게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리고, 야간 주행 시 충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안전운전에도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진공증착은 단순한 기능적 편의 외에도 외관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용도로도 매우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화장품 케이스다. 유리로 된 병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뚜껑에 고급스러운 느낌이나 질감을 주기 위해 진공증착 기술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공증착 또는 코팅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보이지 않게 삶에 편리함을 제공하고, 때로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당사가 홈페이지 주소에 증착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아닌 코팅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코팅이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일러스트나 연예인 사진의 보관에서 찰나의 순간 촬영, 안경 렌즈, 자동차 헤드램프로 코팅이 적용되는 분야는 달라졌지만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다. 당사와 같은 코팅 장비를 만드는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의 경영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희신 한일진공기계 대표 heeshin@vacuum-coa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