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에서 힘과 순발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힘이 세면 똑같이 치고받아도 더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순발력이 좋으면 공격을 피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한 기술을 사용하기가 용이하다.
주로 근육 단련을 해오던 IBM이 또다시 순발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레노버에 x86서버 사업을 팔았다. 슈퍼컴 왓슨 그룹을 신설하고 10억달러를 투자한다. 연말까지 추가 데이터센터 15개를 짓는데 12억달러를 쏟아 붓는다. 모두 지난달 나온 발표다.
IBM이 x86서버 사업 매각을 발표할 때 많은 사람이 레노버의 `왕성한 식욕`에 집중했다. 하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IBM의 속내다. IBM이 IT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레노버보다 크기 때문이다.
IBM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꾀한다. 기업 환경은 자체 인프라를 구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터넷으로 서비스를 받는 클라우드 시대로 접어들었다. IBM도 클라우드 사업을 해왔지만 선두 아마존을 따라가려면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아마존은 지난해 6억달러 규모 미 중앙정보국(CIA)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수주하며 공공 IT시장 터줏대감 IBM에 큰 충격을 줬다.
클라우드 사업 강화를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의 핵심인 x86서버를 매각한다는 말은 역설처럼 들릴 수 있다. IBM은 수익성 낮고 거추장스러운 x86서버를 버리고 고마진 서비스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세계 40개 데이터센터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마존과 경쟁할 심산이다.
100년 기업 IBM은 과거에도 결정적 순간마다 순발력을 발휘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을 이어왔다. 1990년대 초반 존폐 위기에 처했을 때는 최초로 외부 출신 루 거스너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9년 전엔 PC 사업을 매각하고 소프트웨어와 컨설팅 기업의 길을 택했다.
IBM 매출은 하드웨어 사업 부진으로 7분기 연속 감소세다. 그런 IBM이 이번에는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택했다. 과연 과거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