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CES). 유독 눈길을 끈 제품은 디저트를 만드는 3D프린터 `셰프젯`이었다. 사탕이나 초콜릿, 과자 원료를 넣으면 원하는 모양의 디저트가 금방 완성된다.
제과회사 허쉬는 조만간 3D프린터로 찍은 초콜릿을 내놓을 예정이다. CNN은 허쉬 발표 후 “3D프린터로 찍은 음식이 식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기존 제조 방식에 혁명이 시작됐다.
3D프린터는 캐드프로그램으로 3차원 물건을 설계한 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을 만드는 프린터다. 액체나 분말 형태 원료를 분사해 극도로 얇은 막을 쌓아올리거나 합성수지를 깎아 모형을 제작한다. 권총, 신발, 항공기 부품에서 음식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 제조업 혁명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3D프린터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뉴욕타임즈는 3D프린터 아버지로 `척 헐(Chuck Hull)`을 꼽았다.
◇모든 물건을 프린트하는 기계를 만들다
척 헐은 현재 3D 시스템즈 공동창업자며 최고기술책임자(CTO)다. CD와 캠코더가 대중에 소개된 1983년 척 헐은 3차원 물건을 프린트하는 기계를 생각했다.
1986년 그는 최초의 3D 프린터 `SLA1`을 개발했다. 액체를 굳혀가며 쌓는 첨가형 모델로 `스테레오리소그라피(SLA:Stereolithography)`라고 불린다. 액체 상태 광경화 수지에 고밀도 레이저를 주사해 굳히는 방식이다. 처음으로 만든 물건은 아내에게 준 찻잔이다.
3D프린팅은 척 헐이 개발한 첨가형(Additive)과 커다란 합성수지를 둥근 날로 깎아 모양을 만드는 절삭형(Extrusion deposition)으로 나뉜다. 현재 주목받는 기술은 척 헐이 개발한 첨가형이다. 아직 첨가형으로 매끄러운 표면을 만드는 건 무리지만 복잡한 내부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기가옴은 “SLA 프린터는 고품질 조형작업이 필요한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제조 시대 열어
척 헐이 3D프린팅을 고안한 이유는 각종 산업 샘플을 좀 더 싸고 빠르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디자인 엔지니어였던 척 헐은 부품을 디자인한 후 설계도를 그려 플라스틱 샘플을 만드는 제작자와 논의했다. 척 헐은 인더스트리위크와 인터뷰에서 “부품 샘플만 만드는데 최소 6주 이상 걸리고 설계대로 나오지 않아 다시 제작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싶었다”며 3D프린터 고안 당시를 설명했다.
척 헐이 처음 3D프린터 개념을 소개했을 때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거대한 3D프린터 시제품을 들고 다닐 수 없어 소개 영상을 만들었다. 자동차 업계가 먼저 반응했다. 경쟁사보다 빨리 부품이나 자동차 모형을 만들어낼 기술이었다. 자동차 제조사 반응에 힘입어 1986년 3D 프린터 개발에 성공한 후 3D시스템즈를 세웠다.
3D시스템즈는 현재 스트라티시스와 함께 3D 프린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3D시스템즈는 1300달러(약 140만원) 짜리 보급형 `큐브`를 내놓으며 3D프린터 대중화를 이끌었다. 큐브는 인형과 장신구, 생활용품 등을 찍어낸다.
◇혁신은 진행 중
지난해 11월 이코노미스트는 `2013 프레스티저스 혁신상` 수상자로 척 헐을 선정했다. 톰 스탠다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은 “척 헐은 30년 전부터 3D프린팅 상용화에 큰 공을 세웠다”며 “3D프린팅은 디자인과 제조, 판매를 모두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은퇴했을 척 헐(75세)은 아직도 3D시스템즈에서 기술을 총괄하며 3D프린팅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3D프린팅의 최대 강점은 복잡성과 맞춤화”라며 “복잡한 구조와 각기 다른 모양이 필요한 분야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공 신체 조직 등 의료 분야에서 3D프린팅 혁명을 기대했다.
척 헐은 “80~90년대 제조업체는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동했지만 3D프린터 기술은 선진국의 꺼진 제조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며 미래를 전망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m
◇척 헐
-3D시스템즈 공동창업자 겸 CTO
-1939년 5월 12일생
-1986년 스테레오리소그라피(SLA) 방식 3D프린팅 특허
-1986년 3D시스템즈 설립
-2013년 이코노미스트 프레스티저스 혁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