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유달리 가격이 저렴한 치킨집이 들어섰다. 기존 치킨집과 맛은 비슷한데 가격경쟁력이 뛰어나 장사가 잘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치킨 조리에 필수적인 기구를 주인이 훔쳐다 쓰고 있었다. 조리기구 구입에 들 비용을 가격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은 것이다. 이럴 경우 그 치킨집의 가격경쟁력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실제 미국 IT업계에서는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불법 IT소프트웨어에 의한 부정경쟁 방지법`이 그 실체다. 이미 50개주 3분의 2가 넘은 36개주에서 부정경쟁 방지법을 발의해 시행 중이고 더 확대될 전망이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불법으로 소프트웨어를 복제 사용해 단가를 낮춘 완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면 부당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하고 벌금과 더 나아가서는 수출 금지를 시킨다는 내용이다.
세계 수출기업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인도·태국 등의 업체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은 인도와 중국의 의류 회사를 제소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검찰은 태국의 새우 수출회사에 수만 달러 벌금을 부과했다. 제품 제조와 경영관리 과정에서 불법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했고, 이를 기반으로 원가를 낮춰 부정 경쟁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입장에서는 주요 교역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움직임을 간과할 수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인식이나 관리 체계가 많이 미흡한 형편이다. 소프트웨어연합(BSA)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수년째 40%대에 멈춰 줄어들지 못하고 있다. 절반에 가까운 소프트웨어 사용자가 불법복제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19%), 일본(21%) 등과 비교하면 심각하게 높은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2010년 연간 7700억원으로 추산된 국내 손실액은 2011년 8900억원으로 늘어났고 이제 1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불법복제 사용으로 자칫 수출길이라도 막힌다면 해당 업체는 존망이 걸린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 저개발국 기업과 같은 취급을 받는 망신은 둘째다.
국제무역의 냉혹한 현실이라고만 탓할 일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에서 가진 한국의 위상으로 보면 훔쳐 쓴 불법제품으로 만든 결과물 가치를 주장하기는 적절치 않다. 우리 위상에 걸맞게 인식을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지식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낮은 편이다. 따라서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손해보는 일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선진국은 소프트웨어는 누군가 힘들게 개발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립돼 있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소프트웨어 혁신전략`을 내놓으면서 무형의 지식재산권에 대해 제 값을 받도록 유도하겠다고 발표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소프트웨어는 엄연한 지식재산권의 객체로서 개발사 노력의 산물이다. 소프트웨어는 무형이라 할지언정 개발에 들인 노력은 유형의 제품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말그대로 명백한 불법이다.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을 필수화해 불법복제 사용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한다.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식재산 존중의 사회 풍토를 뿌리내려야 한다.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수출기업도 자칫 불법 소프트웨어로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ghlee@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