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라클, 총판에 중고 제품 `밀어내기` 단행…甲 횡포에 업계 비난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다국적 IT기업의 하드웨어(HW) `밀어내기`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SW) 기업에서 HW기업을 인수해 성과를 내고 있는 오라클이 국내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수년간 `밀어내기`를 단행해 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오라클 국내 파트너들은 오라클의 부당한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면서 수억원대의 악성 재고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오라클이 국내 파트너인 부가가치공급자(VAD)·다이렉트매니지드파트너(DMP)를 대상으로 HW 밀어내기를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밀어내기 영업은 벤치마킹테스트(BMT)·개념검증(PoC) 등에 활용된 데모 장비들이 주를 이룬다는 게 기존 밀어내기 형태와 다른 점이다.

글로벌 IT업계의 오랜 관행인 물량 밀어내기는 기업이 목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일정 수량을 총판 등 국내 유통 파트너에 강제 구입하도록 하는 행태를 말한다.

한국오라클이 이번에 밀어내기한 제품은 `엑사데이타`다. 2008년 처음 출시된 오라클 엑사데이타는 HW와 SW를 결합한 데이터베이스(DB) 머신으로, 오라클 내부적으로 창사 이래 가장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제품으로 알려졌다. 제품 가격은 사용 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20억~30억원 수준으로 고가 제품군이다.

엑사데이타 제품을 유통하는 한 국내 파트너사 관계자는 “워낙 고가 제품이라 제품 출시 초기에 판매가 쉽지 않았다”며 “당시 파트너들에 최소 한 대, 많게는 서너 대 이상을 강제로 밀어내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글로벌하게 워낙 잘나가는 제품이라 한국오라클의 영업 담당자들이 매출 압박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안다”며 “파트너들은 유통 자격(총판권)을 유지하기 위해 응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밀어내기 한 제품들 대부분이 시연용 데모 장비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고객사 PoC용으로 파트너들에 먼저 제품을 구매토록 했던 것이다. 고객과 계약이 성사되면 우선공급권을 주고 성사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파트너사가 수억원대의 제품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중고 제품을 밀어내기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또 오라클은 매년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하기 때문에 이내 구형 제품이 되고 말아 고객들에게 판매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오라클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오라클의 VAD 파트너사는 일곱 군데다. 이 중 SW 유통을 전담하고 있는 2개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파트너가 이러한 밀어내기 물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자 자사 자산으로 오라클 제품을 취득, 감가상각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떠안고 있는 밀어내기 물량은 적게는 3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른다. 실제 낮은 마진율과 밀어내기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파트너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트너사 관계자는 “한국오라클에 이 같은 불공정 영업 방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순간 총판권을 잃게 된다고 봐야 한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은 좋지 않더라도 외형적인 매출 확대에 오라클 총판권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버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오라클 측은 “파트너사에 밀어내기 하지 않는다”며 “데모 장비는 파트너사들이 사업 확대를 위해 자체 투자 개념으로 구입하는 것이지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