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눈 돌리는 독립제작사…"살기 위해 떠난다"

우리나라 독립제작사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빨라졌다.

독립제작사협회는 지난해 말부터 판미디어홀딩스(대표 이창수), 센미디어(대표 이재준), 몬스터리퍼블릭(대표 추교진) 같은 독립제작사들이 해외 제작사와 합작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해외 방송사에 방영권을 수출하는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판미디어홀딩스는 우선 영국, 유럽, 미국 시장을 개척했다. 판미디어는 올해 10월 해외 제작사와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BBC1을 통해 영국에서 방영할 예정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사상 최초가 된다. 판미디어는 채널A와 함께 영국 제작사인 OSF(Oxford Scientific Films)와 `리처드 하몬드의 빅웨더(Richard Hammond′s Big Weather)`를 공동 제작한다. 이후 우리나라와 유럽, 미국 등지에 방영할 예정이다. 리처드 하몬드의 빅웨더는 60분짜리 3편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다.

몬스터리퍼블릭은 독일 시장을 뚫었다. 몬스터리퍼블릭은 지난해 11월 다큐멘터리 `빅마우스(Big mouth)` 방영권을 독일 배급사 KSN에 판매했다. 빅마우스는 독일 방송사를 통해 올해 방영될 예정이다. 몬스터리퍼블릭은 해외 배급사 LGI와 빅마우스에 대한 해외 배급 계약을 지난달 체결하기도 했다. 몬스터리퍼블릭은 재작년부터 다큐멘터리 `트레블 로그` 방영권을 홍콩 등 아시아에 판매하고 있다.

센미디어는 아시아시장에 파고든다. 지난해 말부터 지난달까지 태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 아시아에 `탑디자이너` 방영권을 수출했다. 센미디어는 지난해 11월 태국 방송사 `트루 비전(true vision)`과 방영권 계약을 맺었으며, `li TV 아시아`에 올해 초 주문형비디오(VoD)를 판매하기도 했다.

독립제작사들이 해외로 나서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방송사와 형성된 한국식 `갑을관계`는 생존을 위한 최저기준도 못 맞춰준다. 이윤은 그림의 떡이 됐다. 10년이 넘도록 제작비는 오르지 않고 저작권은 거의 대부분 지상파 방송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독립제작사가 수익을 낼 창구는 막혔다.

내보낼수록 밑지는 국내 방송보다는 해외 시장을 택했다.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방영권만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국산 다큐멘터리 최초로 BBC 방영을 앞둔 이창수 판미디어홀딩스 대표는 “인건비는 오르는데 제작비는 늘 같고, 한국 방송 환경에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영국 BBC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이 독립제작사에 귀속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영국에서는 독립제작사가 저작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평균적으로 약 10년간 다큐멘터리 방영권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장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독립제작사들의 해외 진출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재준 센미디어 대표는 “저작권을 갖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다 보니 국내보다는 해외 문을 두드리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녕?! 오케스트라`로 국제 에미상을 수상한 센미디어는 아시아 국가들에 `탑디자이너` 프로그램 방영권을 지난해 말 판매했다. 업계 관계자는 “바뀌지 않는 한국 방송시장은 희망이 없지만 해외 방송사는 저작권을 인정해주니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방영권 등의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아이러니하지만 국내보다 해외 진출이 훨씬 쉽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서두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제작사의 잇따른 해외 진출은 결국, 국내 지상파TV 방송사의 질 낮은 콘텐츠 수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던 독립제작사들이 해외 방송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 국내 방송사와 계약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동렬 성신여대 커뮤니케이션 교수는 “국내 독립제작사가 직접 BBC 등 해외 방송사와 계약하기 시작하면서 독립제작사의 높은 수준을 해외 방송사들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낮은 제작비와 저작권을 방송사가 다 갖는 방송사의 잘못된 관행이 결국 방송사의 실패를 불러올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독립제작사에 제대로 된 제작비를 책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