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얼마 전 창립 10주년을 맞아 사용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추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돌아볼 수 있는 `회상하기`를 선보였다. 각 사용자가 처음 올린 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사진 등을 모아 한 사람만을 위한 1분짜리 맞춤형 디지털 자서전을 선사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의미 있던 순간들을 멋진 음악과 함께 보여주자, 한동안 타임라인은 친구들이 올린 `회상하기` 영상으로 가득 찼다. 사용자 12억명이라는 수치보다 이용자 개개인과 눈맞춤하는 페이스북 식 감성 소통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회상하기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 애인과 함께 다정하게 찍었던 몇년 전 사진이나 술자리에서 과도하게 신나게 놀던 장면을 담은 사진이 갑자기 튀어나오면 달갑지 않다. 페이스북을 오래 쓴 사람일수록 더하다.
싸이월드도 미니홈피에 접속할 때 여러 해 전 추억의 사진들이 팝업으로 뜨게 했다. 잊고 지내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옛 남친 사진이 튀어나오며 심란해졌다는 사람도 많다.
본인 스스로 기억 저편으로 넘긴 과거가 갑자기 드러날 때 적잖은 충격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서비스는 우리가 올린 글과 사진을 저장해 두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한다. 모바일 기기 보급과 함께 우리의 일상, 행적, 취향과 소비 정보는 더 많이 쌓인다. 이를 분석하는 기술도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미 많은 인터넷 기업은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지만 스토리지의 데이터는 사실상 무한하다. 인간은 불필요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망각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지만, 최근 몇 년 새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과 맞닥뜨려 당황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가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일상의 모든 궤적이 디지털로 기록되는 세상이다. 인간의 망각 본능이 기술을 변화시킬지, 기억의 기술이 인간을 바꿀지 궁금해진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